아키인터뷰. 스트리트H “사람이 곧 책이라고 믿는 사람”

카페 살롱 드 팩토리 아키(aRchie) : 사람이 곧 책이라고 믿는 사람
스트리트H Street H
2010.06.01.

 

지난 2006년 문을 연 카페 살롱 드 팩토리는 독특한 공간이다. 살롱 드 팩토리는 카페이면서 상담소이고 때론 연극 무대이면서 동시에 세미나룸이다. 이곳에서는 사람들이 커피와 분위기를 즐기는 데 머물지 않고 그 자신들이 하나의 ‘콘텐츠’로서 대우받는다. 이 공간에 개성을 불어넣고 있는 김우성 사장(이하 아키aRchie)을 만나보았다.

1969년 뉴욕 이스트 47가 231번지. ‘공장’ 흔히 팩토리라 불렸던 그곳에서 팝아트는 시작되었다. 기술에 의한 무한 복제가 시대정신이 되리란 걸 누구보다 먼저 깨달았던 영리한 예술가 워홀은 예술을 비즈니스로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은색의 포일로 감싸여진 팩토리엔 라이자 미넬리, 믹 재거와 제리 홀 부부, 루 리드, 트루먼 카포티 등 수많은 스타들과 명사, 패션 관계자들이 들락거렸다. 워홀은 팩토리를 누구나 들락거리는 곳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가장 예쁘거나 매력적이거나 부자이거나 유명해야만 그곳에 출입할 수 있었다. 철저히 유명세와 상업성에 복무한 배타적인 예술공장. 그곳이 팩토리였다.

그러나 2010년 홍대앞의 팩토리는 다르다. 카페 살롱 드 팩토리의 대표 아키씨는 그곳을 찾는 사람 모두를 작가로, 예술가로 생각한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콘텐츠의 색깔과 향기를 제대로 드러낸다면 그것이 곧 예술이라는 것이다. 상업 예술주의와 저 양극에서 마주보고 있는 생활 예술주의를 꿈꾸는 사람, 살롱 드 팩토리의 ‘공장장’ 아키씨다.

살롱 드 팩토리의 공장장이면서 ‘아키브레인’이라는 1인 브레인 회사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1994년부터 건축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1999년 회사를 차려 공간•문화•기술•콘텐츠등 4개 키워드를 아우르는 일을 해왔다. 남들은 명함을 받고도 그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이종교배와 다방향성의 작업이 어쩌면 그로 하여금 통섭統攝, Consilience이라는 지혜를 깨닫도록 만들어준 것인지도 모른다.

‘홍대앞이라는 지역문화생태계의 끄트머리에 불과하다’며 한사코 인터뷰를 거부했던 그와 드디어 마주앉았다. 은회색 사과 로고가 그려진 컴퓨터 옆에는 과학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살롱 드 팩토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90년대 초반부터 홍대 부근에서 살았어요. 카페에서 시간 보내길 좋아했고, 즐겨 가던 곳 중 하나가 팩토리였죠. 2005년 말 친구와 카페에서 전시회를 해보자 해서 팩토리 전 사장과 얘길 나누다가 카페를 인수하면 어떻겠느냐는 얘기가 나온 거죠.

전업 카페주인은 아니시죠? 아키브레인 회사 대표이시면서 다양한 일을 하고 계신데요.
전업이 아니어서 오래할 수 있는 거 같은데요(웃음). 제가 건축 전공이긴 하지만 IT 벤처회사를 운영하며 콘텐츠 사업을 오래 했어요. 2005년부터는 주로 사업과 문화기획 컨설팅 사업을 하고 있고요. 카페를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게 앞으로 10년은 바라보고 하자는 거였어요. 그 정도 여유를 갖고 해야 조금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한 거죠. 4년여 동안 다양한 기획과 행사를 운영해봤고, 지금은 상상마당 아카데미를 포함해 문화기획에 대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 카페 이름 앞에 ‘살롱’이란 단어를 붙였지 않습니까? 문화예술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거라 생각되는데요.
2007년 즉 시즌 2 때부터 작가낭독회, 연극, 전시 등의 활동을 더해 문화살롱이라는 개념으로 운영했지요. 올해 시즌 3의 방향은 ‘휴먼 북 소사이어티’라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카페란 콘텐츠가 소통되는 곳입니다. 문화 콘텐츠가 따로 있고, 그게 카페에서 이뤄진다는 게 아니라 즉 카페라는 물리적 공간이 문화활동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손님 한 명 한 명이 이 카페를 채우는 콘텐츠라는 의미죠. 제겐 손님들이 각각 소중한 한 권의 책 같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지난 5월부터 ‘책되기 프로젝트’란 걸 하고 있고요.

‘책되기 프로젝트’는 크게 즐기기enjoy-만들기make-되기be의 세 가지 섹션으로 되어 있던데 어떤 의미입니까?
책이든 그림이든 기술이든 처음엔 그냥 즐기는 걸로 시작해서 ‘아, 나도 해보고 싶다’ 하면서 만들어보고 그러다가 진짜 문화 생산자가 되기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아이폰이면 아이폰, 잡지면 잡지… 어떤 콘텐츠에 대해 선행 지식을 가진 분과 함께 모여 정보를 가지고 즐기고, 만들어도 보고, 직접 해당 분야의 생산자가 되어보는 프로그램을 만든 거죠. 손님(사람)이 곧 책(콘텐츠)이라는 의미에서 ‘책되기 프로젝트’입니다.

사교가 주가 되는 살롱에 비해 문화아카데미나 대안교육공간을 연상시키는 활동인데요.
살롱 드 팩토리는 절대 아카데미가 아닙니다. 책이 많다고 우리 카페가 북카페가 아닌 것처럼요. 우리끼리 그냥 소박하게 나누고 배우는 그런 공간이라 여겨주면 좋겠어요. 매일 일정 시간에 카페에 오면 저와 같이 공부하는 ‘365일 아키와 공부하기’ 같은 프로그램도 있어요. 키워드를 트위터나 웹에 공지하고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 공부하는 거예요. 함께하는 분들은 대단한 예술가나 그런 분들이 아니라, 평범한 보통사람이지요. 저는 그런 분들이 모두 생활 예술가라 생각합니다. 또한 교육이란 형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지식의 확산과 공유, 전이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북카페가 아니라고 하셨지만 장서량이 어마어마합니다. 서재는 인간을 대변한다는 말이 있는데요. 이 서가의 어떤 책들이 인간 ‘아키’를 보여주는 걸까요?
북카페가 아니라고 말씀드린 건 이곳의 책들이 제 서재를 고스란히 옮겨온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워낙 잡다한 인간이라서 독서취향도 건축·철학·인문·문학·예술·디자인 등 다방면을 아우릅니다. 예전엔 주로 철학과 미학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는데 요즘은 어쨌건 문학입니다. 문학이야말로 ‘콘텐츠의 보고’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
폴 오스터 그리고 하루키입니다. 몸이 힘들 때도 하루키를 읽으면 위안이 돼요. 소설보다 수필이 그렇죠. 하루키를 보면 자꾸만 궁금해집니다. 이 작가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또 제임스 조이스를 꼽아야겠군요. 그는 좋아한다기보다는 평생의 숙제 같은 작가죠. 하루키 얘길 좀 더 하자면 우리 사회가 아이디어는 있는데 그걸 꽃피우는 지구력이 부족한 거 같아요. 문화야말로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거 아닙니까?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고요. 특히 문화예술의 영역에서 지구력을 기를 수 있도록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가 시간과의 싸움이며 결국은 지구력이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생각해보면 홍대앞이란 지역도 자꾸만 변화하고 있는데요.
홍대가 좋았던 건 이곳이 동네 같아서예요. 가게 오픈한다고 떡 돌리고, 아는 분 만나면 서로 인사하고, 이런 분위기는 강남과는 사뭇 다른 거잖아요. 김명한(Aa디자인뮤지엄 대표) 어르신 같은 분이나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카페를 운영하는 동료들이 많다는 것도 힘이 됩니다. 홍대앞이 상업화되었다고 우려하는데, 그런 흐름 자체를 부인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홍대다움을 지켜온 문화적인 곳들과 상업적인 곳들이 상호 균형을 이룬다면 괜찮은데 그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게 문제죠. 그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숙제인 듯 싶습니다.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홍대 건축물이나 문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요?
예술전문 서점 아티누스Artinus죠. 서점 옆에 붙어 있던 카페 리브로도 자신만의 색깔이 있던 공간이었어요. 매니저님이 나이 지긋한 분이었는데 그분을 보며 나도 나이 들어 저런 일상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티누스가 있던 그 천지빌딩이 아마도 홍대앞에서 가장 끔찍하게 훼손된 빌딩이 아닌가 싶은데요.
지금은 무슨 클럽인가 들어서면서 몰라보게 달라졌지요. 예전 아티누스는 단지 서점이라고 부르기엔 아까울 정도로 서점 그 이상의 아우라를 보여준 공간이었는데요. 그 점에서 참 아쉽습니다.

상상마당의 제1회 ‘독립문화기획자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계시죠. 독립문화기획자 학교에선 어떤 내용을 다룹니까?
문화를 매개로 다양한 활동을 기획해보고자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데요. 치과의사부터 환경운동가, 무역회사 대표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5개월이나 되는 만만치 않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수강생 분들의 면면을 보노라면 ‘아, 참 갈증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대개 이론 수업과 워크숍을 반반으로 진행하는데 전 여기에 ‘사업’이란 측면에서의 노하우도 전수하고 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시스템을 모르면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현실적으로 풀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기본 전제를 ‘사업’으로만 잡는 건 정말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화, 창작에 대한 대중의 갈증을 이야기하셨는데요. 이런 활동을 통해 그게 해소가 될까요?
옛날에 연날리기를 하다가 줄이 엉키면 아이들이 전부 모였어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머리를 맞대는 거죠. 그런데 요즘 애들은 연줄이 엉키면 그냥 잘라버리고 새로 사요. 강연이나 이런 활동들이 문제를 바로 해결해주리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문제 해결의 본질은 당사자들이 모이는 데 있으니까요.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소통할 수 있는 일종의 소사이어티를 만들고 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그게 저와 살롱 드 팩토리가 존재하는 이유죠.

2010년 6월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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