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칼럼 Tech+ MUSIC

기계로 자동연주되는 음악의 역사는 생각보다 긴 편이다. 1800년대에 이미 사람없이 연주되는 자동피아노가 발명되었고, 이후 1851년 카우프만(F.T.Kaufmann)에 의해 회전 실린더를 이용하여 타악기와 관이 추가된 오케스트리온이 만들어지는데, 1920년대의 재즈시대에 들어 오케스트리온은 절정기를 맞이한다. 주로 독일의 제작자들이 복잡하고도 표현적인 재즈 스타일에 맞추어 오케스트리온을 발전시켜왔다.

올 초 국내발매된 팻 매스니의 솔로앨범은 오케스트리온을 현대의 기술로 부활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다. 팻 매스니 특유의 음색과 리듬, 하모니가 잘 어우러져있는 이번 앨범의 연주는, 기계와의 연주라는 사전 정보가 없었다면 기존 세션과의 합주라해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교한 어쿠스틱 사운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놀라울 따름이다.

앨범자켓을 보면 기타를 든 팻 매스니와 악기와 기계들이 잔뜩 놓여있다. 야마하의 자동 피아노인 디스클라비어(Disklavier)와 비브라폰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악기를 구성하는 드럼셋, 일렉기타, 어쿠스틱 기타, 마림바, 퍼커션 들이 솔레노이드 (전기에너지를 자기에너지를 통해 기계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장치에 연결되어있다. 이 악기들을 팻 매스니의 기타를 통해 시퀀싱을 하고 디지털 퍼포머(Digital Performer) 소프트웨어를 거쳐 솔레노이드를 통한 기계조작으로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것인데, 현장감있는 랜덤연주를 위해서 디제잉(DJing)에 많이 쓰이는 프로그램 에이블톤 라이브(Ableton Live)도 활용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시도가 가능해진 것은 다양한 기술 엔지니어들과의 협업 덕분이다. 그들 중 특히 에릭 싱어(Eric Singer)는 뮤지션, 아티스트, 엔지니어로 구성되어 꾸준히 음악로봇을 연구해 온 LEMUR(League of Electronic Musical Urban Robots)그룹의 일원으로, 그들의 대표적 작품중하나인 기타봇(GuitarBot) 역시 이번 연주에 참여하였다.

‘로봇 연주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게된 기념비적인 시도’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궁극’이라는 평을 듣고있는 이 진지한 재즈뮤지션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깊이 생각하게 된것은 오히려 인간적 감성에 대해서 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느끼고 표현하는 감성적인 부분은 어떻게 정의 내려져야하는지. 어떤 식으로든 기계와 인터페이스하지 않고는 살수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화두인 듯 하다.

팻 매스니의 진지함과 반대 지점에 서있는 메이와덴키(Maywa Denki)는 마사미치와 노부미치 토사에 의해 1993년 결성된 아트 유닛이다. 아버지가 경영하다 오일쇼크로 1979년 도산한 회사를 이어받아 예술과 디자인 그리고 제품을 넘나드는 독특한 미디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회사형태로 늘 푸른 작업복을 입고다니며 언젠가 메이와덴끼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는 이 유닛의 작업 키워드는 “넌센스’이다. 그들의 작품은 ‘제품’이며 라이브 퍼포먼스는 ‘제품시연회’이다. 90년대 말 일본내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2003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Ars Electronica Festival)등 각종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에서 상을 휩쓸며 현재 가장 주목받는 미디어 아티스트인 이 그룹역시 음악활동을 한다. 1997년 소니를 통해 그들의 첫번째 음악앨범을 선보였으며, 선풍기 모터와 스위치, 망가진 밥통 등에서 나온 부속들로 팻 매스니의 오케스트리온과 일면 닮기도 한 밴드를 만들어 퍼포먼스를 하는 모습을 보면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웃음을 짓게 된다. 즐거움, 즉각적인 피드백 -웃음-을 주는 인간미 넘치는 기술. 기술을 지나치게 어렵고 심각하게만 여기고 있는 분들께는 메이와덴키를 꼭 소개해드리고 싶다.

사실 음악의 역사는 기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인류는 소리를 구조화시키고 그 구조화된 소리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기구와 기법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냈으며, 수학적 비례와 화성을 넘어 점점 조성체계를 넘는 음향학적 접근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탈구조화가 시도되는 현재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소리를 만들고 재생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내재된 태초의 파장이 현실의 사물들과 부딪혀 생각과 감정을 일으키는 울림이 사라지지 않는한, 음악과 소리에 대한 인류의 실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다양한 실험이 계속되어 기계가 생산해낼 수 있는 음악의 스펙트럼이 무한해진다면, 오래전에 누군가 예견했듯 우리의 손자들은 “할아버지 시대에는 정말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나요?”라고 물어볼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되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소리가 단지 소리자체의 기계적 파장을 넘어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에 신비한 울림을 일으켜 감정이나 생각을 흔들게 된다면 그 소리는 상징적인 소리가 된다.” – 칼 융 –

(월간 브뤼트Brut 2010.05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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