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칸의 Salk Institute in 미스터존스(영화, 1993)

대부분의 거장 건축가들은 칭송과 비난을 일반적으로 함께 받는다. 숭배만큼의 부정적인 평가가 늘 따라다니는 것이 보통인데, 참으로 이상하리만큼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외계인같은(?) 건축가가 바로 칸 Louis Kahn 이다. 그것은 아마 그의 건물들이 건축의 본질에 대한 진실한 태도를 통해 성취된 심오한 사상들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901년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난 칸은 1905년 부모를 따라 미국 필라델피아로 이민 오게 된다. 어린 시절에는 미술과 음악분야에 재능을 인정받아 그런 직업을 가지리라 여겨졌으나(실제 생계를 위해 무성영화관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기도 했다), 고교 말엽 건축역사 수업을 듣게된 후 건축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다. 필라델피아 대학시절 이미 두각을 나타낸 학생으로 졸업 후 설계사무소에서 실무을 하던 중,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유럽으로 떠나 건축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깊이 탐구하였으며, 귀국 후에는 연구그룹을 조직하여 이론적 깊이를 한층 더해간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재능과 사상이 꽃피고 세상의 주목을 끌기 시작한 것은, 정작 나이가 50(!!!)이 넘어서면서부터였다. 동료 비평가, 학생들과 진지하고 활기찬 논의를 즐겼던 그는, 1947년에서 57년까지는 예일 대학에서, 57년부터 죽기 직전 74년까지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교육자로도 활동하면서 사상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쳤으나, 성공적인 많은 작품 수행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외면 당하곤 하였다. 손쉬운 편의만을 추구하는 상업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오랜 기간을 요하는 완벽주의적인 그의 작업 태도로 볼 때 이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으며, 결국 그의 사무소는 파산직전의 극심한 재정문제를 겪게되었다. 이러한 힘든 현실과 작품진행 과정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홀로 인도와 방글라데시를 여행하고 돌아오던 74년 3월, 그는 뉴욕의 펜 철도역 화장실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

Salk 생물학 연구소는 척수성 소아마비 백신 개발로 국제적 명성을 지닌 Jonas Salk박사가 1959년 칸의 사무소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그들이 나눴던 대화에 관한 칸의 회상은 다음과 같다.

Salk가 내 사무소로 와서 나에게 연구소를 지어줄 것을 요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 한가지가 있다. 연구소에 피카소를 초대하고 싶다.” 물론, 그가 이렇게 한 말에는 과학적인 판단기준도 있지만, 살아있는 사물이 그 자체로서 존재하려는 의지도 담겨있기를 바란다는 점도 있었다. Salk가 생각했던 것은 존재를 존재로 드러내고자하는 욕망이었던 것이다. 과학자가 예술가의 영역인 ‘예측할 수 없는 것’의 현존을 필요로 한 것이다.

수년 간에 걸쳐 3가지 계획안이 제시되었으며, 1965년에서야 최종 공사가 마감된 건물은 건축에 대한 칸의 완숙한 비젼을 보여준 첫 번째 작품으로, 다양한 건축적 개념이 집결되어 풍부한 상징과 은유로 가득 차있다. 건물은 바깥쪽에서부터 화장실과 계단이 있는 공간(신체)로부터 내부를 향하여 방사형태로 모여들고 있다. 공동의 실험실 공간을 거쳐서 만남의 장소가 있는 보행자 공간을 지나 사람들은 바다의 경관을 볼 수 있고, 티크재로 마감된 개인 사무실이 그 안쪽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끝으로 내부에는 지붕만 없을 뿐인 성당과도 같이 하늘과 바다를 마주하는 침묵의 장소인 중앙정원(정신)이 나오는데, 하나의 물줄기가 홈을 통해 이곳을 가로지르며 바다를 향해 흘러간다.
건물 자체가 인간의 신체와 정서, 사회와 정신 그리고 거기에 자연을 연결시키는 매개체로 보인다. 노출 콘크리트와 나무 그리고 유리라는 원초적인 재료로 만들어진 작업공간, 그리고 Recinto 석재가 바닥에 깔린 고요의 중정이 양쪽 건물 사이에서 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나며, 그곳에 서있는 인간을 자연과 직면시킨다. 이 모든 인공과 자연의 만남은 형언할 수 없는 숭고함을 전하며, 한껏 고양된 정신적 체험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그리고 꿈꾸는 것에 대해” 사색하게 된다. 건축이 위대한 예술의 한 형태로 여겨지기를 원했던 칸은, 바로 이 건물에서 그것을 실현시키고 있다. 무릇 위대한 건축이란, 형태와 재료의 풍부함을 통해서, 인간이 일상사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자아와 사물/자연과의 대화를 이루어 낼 수 있으며, 이것이 기능에 치우쳐 인간존재를 서서히 도구화시키며 삭막해져버린 우리 삶의 터전에서, 칸의 건물이 의미를 지니고 있는 커다란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 건물은 「Leaving Las Vegas」로 유명해진 Mike Figgis 감독의 93년도 작품 「미스터 존스 (Mr. Jones)」에 등장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정신과 의사인 Libbie박사(Lena Olin)와 조울증 환자 Jones(Richard Gere)가 만나는 정신병원으로 사용된 곳이 바로 이 곳이다. 감독이 어떤 의도로 이 장소를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 건물이 치유하는 곳/병원으로 사용된 것은 건축을 전공한 나로서는 의미있게 여겨진다. 이성과 과학으로 상징되는 여의사와 감성과 광기의 화신 죤스. 그들은 치료하는 자와 치료받는 자로 만나게 되지만, 곧 그 관계가 역전되고 있다. 내게는 치유되는 사람이 죤스가 아니라, 바로 그와의 사랑을 통해 감성을 되찾고 사랑을 느끼게되는 여의사인 것처럼 보인다. 물론 영화에서 그는 일상에서 감동을 잃어버린 주변사람들 보다 훨씬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역시도 분명 홀로는 불완전한 것이 사실이며, 사랑을 통해 조화되고 하나임을 느낄 때 서로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게 되었다. 영화 전편에 흐르던 우리네 삶에 대한 이러한 생각들을 물화시킨 듯한 이 건물의 등장은 그래서, 범작에 불과했던 Figgis 감독의 이 영화에 어느정도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현대건설사보.1998)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