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흡혈귀는 지루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를 보거나, 무한반복의 테트리스 게임으로 시간을 ‘견뎌’낸다. 그리고 가끔씩 관에서 잠을 잔다.
관coffin : Non-Memory Space
늘 커피 한잔으로 시작된다. 밥 먹고 얘기하고, 같이 자고 그리곤 또 다시 반복이다. 가만히 관속으로 들어가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 매혹적인 폐쇄공간이 안식을 주는 것은, 그 누구와도 함께했던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기억이란 나를 둘러싼 공간 속에 또아리를 틀고 부딪히는 그 순간 가슴을 때려댄다. 그래서 관은 상처받은 기억으로 둘러싸인 외부의 공간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갑옷이자, ‘다른’ 세상에 기댈 수 있는 통로이다. 기억할 것이 없는 공간엔 죽음의 상상만이 존재한다.
엘리베이터 : Encounter
문을 통해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약속한 듯 앞만 쳐다본다. 무의식적으로 프로그래밍되는 수직 기능공간. 오히려 의외의 행위가 쉽게 가능해지는 그 곳에서의 만남이란, 그래서 늘 영화적이다. “고장난 엘리베이터에선 꽉 막힌 이 공간을 악기로 생각하면 되는 겁니다. 나를 그 악기의 일부로 던져 보는거죠, 벽을 두드리고 천장의 환풍기를 향해 소리치고.. “ 중력을 거스르려는 근대의 욕망공간과 주술처럼 일체가 되어 하나의 울림이 되는 순간, 우리는 마법의 문이 열리는 것을 경험한다. 이 네모난 공간을 뒤로한 채, 열려진 문을 나서면 그 곳은 아마도 매일 지나치던 그 곳과는 이미 전혀 다른 장소로 변해있을런지도 모른다.
Pause : music “Between the lines” album by Janis Ian
17살 파티에서 배운 진실이란, 사랑은 디카프리오 혹은 데인즈들을 위한 것이라는 것. keiner liebt mich! 나홀로 맞이하게 된 30번째 생일을 앞둔 난, 속 깊은 이성친구 Z와 남산 자락의 자그마한 식당 Pishon으로 향한다. 3개의 나무계단을 내려서 다 합쳐야 20명 남짓 들어가기에도 빠듯할 공간에선 주인 아저씨?의 기타 콘서트가 열리는 중. 클래식 선율. “꽃밭에 앉아서~~” 등이 맞닿을 듯 Z가 앉은 자리의 뒤쪽엔 한 쌍의 연인, 내 오른쪽의 큰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인 8명의 선남선녀들이 이 시간 손님의 전부이다. 특별한 날을 맞이한 듯한 연인들의 나즈막한 속삭임과 그들만의 파티에 익숙한 왁자지껄 선남선녀들. 패션과 화장으로 중무장한그들을 보면서, 난 “생김새(=꼴?)가 가지는 값”에 대한 생각에 잠시 빠진다. 그리고 이 공간의 아우라가 지니고 있는 한 연인들 소박한 파티 기억을 떠올린다.
파티 : Serendipities / music “Non Je Ne Regrette Rien” by Edith Piaf
사랑받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예쁘고 똑똑하고 사랑하고 사랑받을”거라고 마인트 콘트롤하기 보단 다른 이들을 위한 파티를 한번쯤 열어보자. 맛난 음식이 부담스럽다면 비스켓을 곁들인 간단한 티파티라도 좋다. 오직 나만을 위해 꾸며왔던 집이 이웃들과 소박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다. 첨엔 다소 어색한 분위기. 음악이 빠질 순 없지. 오디오을 틀고, 맘을 열고선 몸을 맡겨라. 떠나버린 그 친구의 말처럼 ‘죽음의 소리를 듣지말고’ 이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자. 주위의 그 사람들 중에 새로운 희망이 보일런지도 모른다. 후회는 없다.
(CINEBUS기고 20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