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처에 미끼들을 쫘악 – 조금은 산만하게 – 깔아놓고 관객에게 알아서 해석하는 재미를 시험해보라고 하는 영화 ‘텔미썸씽’에서, 몇몇 미술 작품들 역시 퀴즈이다. 그 중에서도 물위에 한 여인네가 둥둥 떠있는 그림이 수연의 이미지와 관련되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에서 조반장(한석규)이 처음으로 수연(심은하)의 집을 방문했을 때 수연의 책상에서 발견하는 엽서 속의 그림은 영국의 화가인 John Everet Millais(1829∼1896)의 「오필리어(Ophelia)」이다. 남성 세계의 폭력성에 희생당해 순수성을 상실하는 대표적 인물로서의 오필리어의 이미지는 처음부터 수연에게 강한 희생자의 이미지를 덧씌우며 영화해석을 위한 하나의 코드로 작용한다. 그림에는 자살한 오필리어가 수련의 아치 아래, 연못 물 위로 흐르는 듯 떠있다. 애인의 죽음을 슬퍼하는 버들가지, 죽음을 상징하는 양귀비, 정절을 나타내는 바이올렛 등 다양한 꽃무리들이 은유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묘사되면서 물위에 비극적으로 떠있는 오필리어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 그림은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채수연의 불행한 기억 scene들과 맞물려, 우리로 하여금 점차 그녀가 ‘보호되어야만’하는 인물로 각인하게 만든다. 이러한 이미지의 덧씌우기를 통해 조반장이 가장 중요한 용의자 중의 하나인 그녀에게 그 어떤 범행 가능성도 탐문하지 않으며 심지어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총을 맡기기까지 하는 행동에 관객은 좀 더 동감하게 된다. 이렇듯 순수한 피해자의 위치로 머리속에서 일단 구도화 된 대상의 진실이 밝혀지는 일이란 원래 객석의 불이 켜지기 직전이다. (뭐, 원래 대부분의 관객이 ‘심은하 처럼 예쁜 여자는 절대 나쁜 짓 안한다’는 신념을 지니고 살아간다면 굳이 이런 장치도 필요없겠지만….. 쩝) 하튼, 이후 수연이 별장으로 피신(?)해 있을 때 그 곳 벽에는 원작 오필리어를 모사한 수연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원작과는 달리 수연의 몸이 정면으로 향한 구도인데, 공중에 떠있는 듯 물속에서 부유하는 자신의 신체와는 유리된 듯한 시선을 지닌 그림이다. 자신에 대한 연민인지, 맘속으로 그림을 쳐다보는 자들을 조롱하는 것인지 모를 애매한 시선을 앞으로 던지고 있는 그림.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야 그림 옆 수족관에서 그녀에게 집착하던 사람들의 조각난 사지로 조립된 시체를 보여준다. 깨어진 모자이크 같은 그녀의 영혼과 절단된 시체. 수연은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는 조반장에게 감사하단 말을 남기고는 미완의 시체를 남겨둔채 이국의 땅을 향했다. 처녀 여행, 새로운 출발인 듯, 묘한 미소를 띄우면서…
영화는 끝나지만, 살의는 과연 어떻게 끝이 날까?
그림의 작자 Millais경은 1829년에 태어나 런던의 왕립 예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에서 공부하였으며, 17살 때 이미 전시회를 통해 당대 최고의 역사화가 중 한 명으로 여겨지게 된다. 1848년 그는 로제티(Rosetti)나 헌트 등과 함께 라파엘 전파(Pre- Raphaelite Brotherhood, 그들은 1849년의 PRB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통해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를 구성하여, 르네상스 및 후기 르네상스 경향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디테일과 비일상적인 구성, 명확성을 추구하는 엄격한 태도를 지녔으나, 후기로 갈수록 점차 감상적이며 일화적인(Victorian적) 경향으로 기울게된다. 캔버스에 유화로 그려진 크기 76X112cm(1851∼2년 완성)인 이 그림의 실물을 보시고 싶은 분은 런던으로 떠나세요. 런던의 많은 훌륭한 미술관 중, 주로 15세기 이후의 영국미술과 현대미술 소장품들로 이름높은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 그곳의 상설 회화전시관 중에서 ‘lnspiration of lierature’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Room 4에 가면 볼 수 있습니다. 이 방은 19세기 무렵 많은 미술가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한 주제 ‘Words & Images의 관계’를 어떻게 작품으로 형상화했는지 한눈에 둘러 볼수 있도록 기획되어 있는데, 그들은 주로 성경이나 세익스피어, 고대 신화나 아서왕 이야기 혹은 호머나 오비드 등의 고대 시인들의 작품에서 받은 영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회화 십여작품과 조각 두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이 전시실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늘상 사람들이 바글대는 작품이 바로 이 그림!
(CINEBUS기고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