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계의 대부인 미국의 소설가 윌리엄 깁슨은 그의 소설들에서 생물학적 육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고기meat-’ 라는 접두어를 붙여 다소 비하조로 사용하였다. 사이버공간에 대한 반대어로서의 고기-공간(meat-space), 인조인간과의 대조되는 인간 육체를 고기-장난감(meat puppet), 이런 식이었다.
이분법적 사고가 컴퓨터의 발전과 더불어 극에 달하던 20세기가 마감되자, 인류는 차가운 이성보다는 감성적 상상력, 분석보다는 통섭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사고하며 행동하는 듯 보인다. 기술의 영역에서도 융합을 지향하며 전 방위적인 이종결합이 이루어지고 있다. 컴퓨터공학과 생물학이 만나 컴퓨터 생물학의 장이 열리면서, 우리는 컴퓨터 칩과 거머리의 신경을 짝지어지고, 뱀장어의 뇌와 연결된 로봇을 지켜보게 된다.
컴퓨터 공학 자체의 발전 역시 인간과 기계의 이종 교배를 현실화 단계로 끌어올리고 있다. 깁슨이 그의 소설에서 묘사한대로 두뇌에 메모리를 삽입하는 것이 이제 더이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뇌졸중의 후유증으로 전신마비 (리스병)의 환자가 된 조니 레이는 두뇌 피질에 전극을 삽입하여 전자기 신호를 포착하고, 라디오 파장으로 전환시켜 컴퓨터를 조작하여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메일도 보낼 수 있게되었다. 향후 몇년내 상용화될 BMI(Brain-Machine Interface)의 초기 사례이다.
예술분야에서도 “예술가-과학자-학자”가 복합된 형태의 통섭적 미디어아트 작가들과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스텔락(Stelarc, Stelios Arkadious)은 “인간의 신체는 이제 한물갔다.(The body is obsolete)”라고 주장하는 호주의 퍼포먼스 아티스트이다. 그는 1960년대부터 점점 쓸모가 없어지는 신체를 극복하려하는 노력을, 기술을 활용하여 인간신체의 기능을 확장함으로써 보여주는데 주로 의료기기, 보철물 기술, 로봇공학, 인터넷과 가상현실, 최근들어는 세포배양과 생물학까지 활용기술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그는 신체의 움직임과 기계를 인터페이스 하는 것으로 시작하여(Amplified Body, 1970~1994), 오른팔에 기계팔을 하나 더 달아 근육신호와 이 기계를 소통시키며(Third Hand, 1981~1994), 보철물을 뱃속으로 삽입하여 몸을 예술품 자체로 만들고(Stomach Sculpture, 1993), 6개의 다리를 지닌 거대한 로봇에 자신을 연결하더니(Exoskeleton, 1998) 결국 인터넷 공간과도 연결(Movatar, 2000)을 시도한다.
최근작품에서는 생명공학 실험실에서 배양된 귀를 자신의 팔뚝에 이식시켜 (Extra Ear, 2007), 인간의 몸 자체를 변화시키기 위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원래는 이 귀를 얼굴에 이식하려 하였으나, 볼에 있는 신경을 손상시킬 위험성이 있어 팔의 피부조직아래로 이식하게 되었다. 이 귀는 스스로 혈액공급을 하고, 사운드 칩과 센서를 연결해 향후 기능의 확장을 염두해두고 지니고 있다.
?이러한 행위들이 과연 예술의 영역인지에 대해서는 사실 예술계 내에서도 논란이 많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일상생활에서도 기술적 성과물을 통해 어느정도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인간의 욕구와 필요에 의해 발전되어 온 기술적 성과물이 우리의 생활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그리고 결국 인간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만은 틀림없다. 이 아티스트는 현재 시점에서 그러한 인식의 극한에대한 질문 던지고 있는 것이라 보여진다.
산업혁명 하면 증기기관이, 정보혁명하면 컴퓨터를 떠올리 듯, 인간의 역사는 기술-기계의 성과물과는 불가분의 관계일 것이다. 하지만 기계가 대상물이나 도구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 특히 생물학적 육체 영역으로 점차 침범(?)하는 현재, 우리가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인간-존재에 대한 정체성과도 연결된 문제이다. 스텔락은 육체마저도 대상화 시켜버리면서 “기술이란 인간존재의 의미를 규정하며, 이미 인간 존재의 일부이다”라고 주장한다. 특히 정보화시대에 있어 “육체는 생물학적으로 (이 시대에) 부적합하다”고 까지 말하고있다. 그의 인터뷰들을 보면 스텔락에게 있어 전자적 공간은 정보의 유통공간이 아니라 행위를 수용하는 미디어로서의 의미가 더 큰 것 같다.
육체를 넘어선 저 너머 네트워크 공간에서는 현재 수없이 많은 소셜 미디어 기술들이 범람하고 있고, 행위뿐 아니라 사고와 정신의 미디어/수용체가 되어간다. 그에 따른 반작용일까, 인간세상은 자아의 해체와 개인주의의 강화라는 모순이 혼재되는 양상이다. 새로운 문제도 아니고 영화 아바타와 매트릭스를 통해서도 익히 보아오고 논의된 문제이다. 하지만, 집합적의미로서의 인간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 이러한 상황에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가하는 것은 늘 좀 다른 이야기인것만 같다. 우리는 스텔락처럼 진보적 실험을 하며 문제에 정면 승부할 수 도 없고, 하루하루 생활도 벅찬데, 뭔가 기술적 흐름에 떠밀려가는 느낌도 지우기가 힘들다. 이럴땐 그냥 정답찾기를 멈추고 우선 즐기고 보자. 라고 말하고 싶은데 몸이 잘 따르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하게 된다.
결국 우린 다시 몸을 탐구해야만 한다.
스텔락 처럼…? 헐!
(월간 브뤼트Brut 2010.08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