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진품성에 대한 토론을 하다보면 자주 등장하게 되는 에피소드가 ‘플란다스의 개’이다. 꼬마 네로와 학대받는 개 파트라슈가 등장하여 무진장 고생하다가 결국 성당에서 둘 다 얼어죽는 스토리인데, 너무나 보고싶은 그림을 돈이 없어 못보다가 성당으로 몰래 들어가 이 그림앞에서 엄청난 감동에 압도된 채 얼어죽는다. 작품과 내가 하나가되는 이러한 예술 체험, 누구나 할 수 있는건 아니다.
평상시에는 천으로 덮여있다가 1년에 한번 그것도 돈을 받고 공개되었다는, 게다가 네로는 왜그리 이 그림을 보고 싶었던건지 어린시절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었다. 심지어 그림을 보고 평온하게 죽을 수 있다니, 참으로 불공평한 세상에 대해 큰 깨달음을 주었던 이 스토리에 등장했던 그림은 바로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였다. 한참 후 예술의 아우라 라는 말을 공부하게되면서, 플란다스의 개 스토리와 이 그림의 의미는 참 그럴듯하게 머리로 이해는 되었으나, 모든 것을 내려 놓아야만 했던 불쌍한 네로만 생각하면 여전히 가슴이 찡해져 왔다.
기술대중화의 시대의 예술은 이러한 아우라의 체험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지닌다고 벤야민 선생은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에서 말씀하셨다. 루벤스의 그림처럼 단하나의 원본이 존재했던 시대가 끝나고, 무한 복사가 가능하며 심지어 원본과 복사본에는 어떠한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 시대. 벤야민 선생은 이 시대에는 아우라가 사라지고 예술과 대중의 거리가 급격히 좁아지면서 예술이 숭배의 대상이 아닌 전시의 대상 으로 기능하고, 제의적 숭배적 가치의 아우라가 사라진 자리를 소유 욕망에 따른 상품적 물신같은 것이 대체하게 된다고 하였다. 물론 이런 전시적 기능을 나쁜게 본 것만은 아니어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전환 혹은 예술의 정치화에 대하여 기대하였다.
그는 특히 기술복제시대의 대표적 예술 형태인 사진과 영화를 통해 기존의 권위체계를 붕괴시키고 대중들을 선동하여 혁명적 사회변혁이 가능하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후의 현실에서 독재자들이 대중지배수단으로 이러한 예술형태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면서 정치의 예술화가 진행되었던 사례를 보면,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벤야민의 생각은 참으로 순진하고도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예술의 대중화가 진행되면 될 수록 예술은 현실 혹은 대중과 매우 밀접히 연결되어 더욱 폭발적인 영향력을 가지게 됨이 분명해져왔다. 또한 기술은 원본과 복제본의 구분을 없애다 못해 예술창조자와 감상자의 구분도 점점 없애고 있다. 먼저 예술 감상에 대한 대중의 태도가 비평적으로 변화되었고 결국 예술가에 대한 개념마저 점차 변화시켜 누구나 예술가로 스스로를 규정할 수 있는 기반도 형성되어 온 것이다.
주말 홍대앞을 보면 사진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DSLR을 들고다니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포토샵을 쓸 수 있는 사회이다. 아이폰을 들고 대충 노래를 부르면 몇분만에 나만의 음악이 창작된다. 오랜동안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예술가가 되기위해서는 특별한 기술과 능력을 가졌거나 태어날때부터 부여받은 것이라 생각하며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으나, 우리가 예술을 통해 느끼게 되는 대부분의 감동이 예술가의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라는 미켈란젤로 선생의 말씀을 요즘식으로 해석해보면 결국 예술이 생활의 달인과 큰 차이가 없다는 말씀이다.
예술가를 무슨 특별한 사람으로 치켜세울 필요도 없고, 또 스스로 예술가라고 무슨 선택된 인종처럼 어깨에 힘 줄 필요도 없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만약 세상이 점점 더 변해서 누구나가 자신이 좋아하는, 하고 싶어하는 일을 미치게 하게 되는 때가 온다면, 누구 하나 예술적 경지에 이르지 않겠는가. 하지만, 내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나는 전체로부터 분절화되고 디지털 복제된 상품 컨텐츠로서의 예술 상품 보다는, 흐름과 이야기가 존재하는 총합된 경험을 제공하는 무언가를 더 갈망하고 있다. 아직은 그러한 아우라적 경험에 나의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여전히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그들의 존재 전부를 걸고 작업하는 예술인들이 소중한 이유이다.
“내가 숙련된 솜씨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는지 안다면, 결코 그렇게 감탄할 만한 일이 아니다.” – 미켈란젤로 –
(월간 브뤼트Brut 2010.11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