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의 툴킷에 관심가지시고 방문해주신 한겨레 원낙연기자님께서, 인생도서관이 위탁운영중인 ‘광진구 청년센터’의 활동을 중심으로 청년들을 대상으로한 툴킷프로그램에 대해 상세히 정리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인생도서관의 툴킷 그리고 툴킷워크샵&클래스들은 다양한 삶의 이슈들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습니다. 한국에서 개발된 이 툴킷과 프로그램들을 통해 앞으로 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지구에서의 삶을 위해, 인생도서관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작게나마 지속적으로 펼쳐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회 시선에 맞춰 살아온 청년에게,
세계와 관계 재설정해주는 건축가
‘광진구 청년센터’ 운영하는 인생도서관 대표 아키씨
지난해 4월 광진구 능동로 245에 다양한 청년 활동을 지원하는 ‘광진구 청년센터’가 문을 열었다. 청년들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광진구가 진로 설계와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현장과 연계한 구직 활동과 청년 창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했다. 지난 1년 동안 약 3천 명이 청년센터의 프로그램을 이용했는데, 특히 ‘워크라이프(인생 조망) 프로그램’이 인기다. 진로를 고민하며 방황하는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길을 찾는 데 도움을 받았다는 입소문이 나면서다. 다른 자치구에는 없고 오직 광진구 청년센터만 제공하는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람은 청년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인생도서관’의 대표 아키(49·본명 김우성)씨다.
“센터에서 만난 청년들은 이미 지쳐 있었어요. 미래가 불안한 건 어느 세대나 비슷하지만, 2030세대는 불안감에 피로감까지 커요. ‘스펙과 기술을 갖춰라’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어릴 때부터 많은 시간을 할애한 기술이 이제야 자신과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좌절한 것 같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걸 찾기보다 외적인 요인에 맞추다보니 오히려 길이 좁아지고 불가능해 보이고, 거기서 기력이 빠진 게 아닐까요?”
사회의 시선에 맞춰 살아온 청년들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야 좌절을 겪더라도 자신의 상황에 맞춰 변화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워크라이프 프로그램은 먼저 커다란 모눈종이 같은 양식(위트릭스)에 연도별로 △성격 등 ‘내 정보’ △지금까지 해온 ‘일·활동’ △살아온 ‘공간’ △관계 맺은 ‘사람들’ △‘라이프스타일’ △관심을 가진 ‘이슈·키워드’ 등 6가지를 입력한다. 한장의 종이에 펼쳐진 생애를 한눈에 조망하면서 과거, 현재, 미래의 맥락을 파악하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좋아하는 일은 뭔지 정리하게 된다.
“좋은 일을 하면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은 살고 싶다는 청년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뭐할래?’라고 물어보면 멍해져요. 워크라이프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니 2030세대는 ‘일·활동’ 등 경험의 영역보다 ‘이슈·키워드’ 같은 추상화된 정보의 영역이 압도적입니다.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 추상적인 고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고, 오히려 가능한 길들이 안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이른바 ‘투머치 인포메이션’(TMI·과다한 정보)인 거죠.”
부딪쳐보질 않아서 불안한 청년들을 위해 청년센터는 ‘팟캐스트 만들기’ ‘누리집 만들기’ ‘메이크(공방) 클래스’ ‘브랜딩 글쓰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놓았다. “물건을 만들고 동영상이나 팟캐스트 같은 방송 콘텐츠도 제작하는 등 자잘하더라도 자기 걸 만들어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팟캐스트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처음에는 ‘뭐로 만들지?’ 하고 망설이는데, 워크라이프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삶을 정리한 뒤에는 자기 이야기를 쉽게 시작해요. ‘내 얘길 누가 들어줄까’ 주저하다가도 막상 30분짜리 팟캐스트라도 만들고나면 ‘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생각보다 안 어렵네’ 싶어 계속하게 되고, 그렇게 상상력을 키우면 ‘이런 가능성도 있겠구나’ 인정하게 되는 거죠.”
청년센터는 가능성을 발견한 청년들을 위해 콘텐츠를 실제 비즈니스로 만드는 ‘실전 비즈니스 캠프’도 운영한다. 심사를 통해 선발한 청년을 1 : 1 코칭을 중심으로, 반짝이는 아이디어나 재미있는 콘텐츠를 사업화하기까지 검증하고 실험하는 과정을 돕는다. “자기는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상상력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은데, 뭘 만들고 싶은지 분명해지면 기술은 금방 따라갈 수 있어요. 여러 작업으로 감각을 익히고, 원리를 공부해나가면 ‘나도 세상에서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되거든요. 꼭 대기업을 가지 않더라도 말이죠.”
인생도서관 말고 컨설팅 회사 ‘아키브레인’과 복합문화공간 ‘인생살롱’의 대표도 맡고 있는 아키씨는 건축가다. 10년 전 건축 프로젝트를 컨설팅하다가 인생도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정리하고 분석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워크라이프 프로그램을 구상하게 됐다. “밖에서 보기엔 제가 하는 일이 다 다른 것 같지만, 건축적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해석하고 전략을 짜고 컨설팅을 하거나 뭔가 만드는 일이라서 핵심은 똑같아요. 남들이 부여한 이름이 아니라 제가 선택한 이름으로 살아가고 싶어 붙인 ‘아키’(건축)라는 이름처럼 건축이라는 행위를 죽을 때까지 하고 싶습니다.”
2019.0509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