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자신의 문제에 갇혀 잠시만의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삶의 고통을 당당하게 마주하며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다양한 인문서(철학)들을 만나봅시다.이동하며 장시간의 독서와 사색에 잠길 시간이 없는 분들을 위해, 다양한 시선들의 정수만을 모아 우리를 인도해주는 몇권의 책을 선정해 보았습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강신주 / 사계절)
_ 철학자 강신주는 수많은 책들을 유리병편지로 비유하며, 자신의 서가에 꽂혀있는 수많은 편지들에게서 받 은 위로와 행운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써냅니다. 외로움을 느끼는 많은 이들에게 고독의 시간들을 성장의 계기로 삶기를 바라는 철학자(저자)의 따스한 마음이 느껴지는 책.
48명의 뛰어난 철학자들을 짬짬이 만나며 삶의 다양한 측면들을 돌아보세요. 1챕터에 6페이지 정도의 분 량이니 5분읽고 5분사색하는 지하철 1정거장 만큼의 분량으로 읽기에 적합합니다.
보르헤스 전집 Ficciones 픽션들
20세기 중후반의 모든 인문과학 사조가 보르헤스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평가가 왜 그런지 확인해 보고싶지 않은가요? 꼭 이런 평가가 아니라도 우리의 상상력을 충분히 자극할 만한 철학적 소설. 차분히 그의 단어들 에 젖어든다면 분명 어렵지 않고 재미있습니다.
논리.철학논고 (비트겐슈타인)
_ 1921년에 출간되어 20세기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친 철학책. 1줄 길어도 반페이지를 넘지않는 짧은 명 제들. 하지만 그 한두줄이 우리에게 던지는 파문은 너무도 큽니다. 책을 오래 들여다 보지못하는 덜컹대는 버스안에서 한줄을 마음속에 깊이 던진채 명상에 잠기기에는 이만한 책도 없습니다. 가장 짧지만 강력한 이 책을 완독한 사람이라면 그의 사후에 출간된 ‘철학적 탐구’에 도전해시면 좋을 듯.
00 조이스Joyce (데이비드 노리스 지음, 칼 플린트 그림, 김영사 하룻밤의 지식여행 시리즈 28) 하룻동안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재로 한 소설 중 가장 유명하다 할만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 스’를 들고 다니며 읽기에는 너무도 무거우니, 만화스타일로 조이스를 풀어놓은 책한권을 소개드립니다. 영국에 지배를 당한 아일랜드를 떠나 평생 파리에 살면서 결국 영어로 된 난해한 소설을 출간하여 이후 모 든 영문학자들에게 복수했던(?) 한 소설가의 일생과 그의 작품을 너무도 짧고 쉽게 풀어놓았습니다. 신화, 철학, 심리학, 종교학 등 각종 학문체계를 통달하고야 이해할법한 이 소설을 만화로 먼저 접해보세요.
정재승+진중권 크로스 (웅진 지식하우스)
_ 미학자와 과학자가 만나서 문화와 사회에 대해 떠드는 수다 모음집. 젊은 세대가 즐기는 다양한 일상적 현상에 대해 박학다식한 두 사람이 여러 이슈를 던집니다. 각 챕터들 적당히 짧고 쉽게 넘길수 있으며 재미 있으니, 다소 집중하기 힘든 환경/공간에서라면 이 책이 딱일 듯.
불가능은 없다 (미치오 카쿠, 김영사)
_ 처세서의 제목같지만 원제는 ‘불가능의 물리학 Physics of the Impossible”입니다. 이론 물리학의 세계적 석학인 미치오 카쿠가 투명인간, 순간이동, 시간여행 등 Science Fiction에서 익숙한 여러 기술 들의 가능성에 대해 쉬운 언어로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속한 이 좁은 현실이 갑갑하다고 느 끼신다면 상상을 통해 여러분의 세계를 확장해보세요.
MAKE: Korea 창간호
_ 소비지향의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들. 모든것들을 남들을 통해 대행하고 있지만 가끔은 나만의 것을 직접 해보고 싶은 욕구도 불끈거리지 않나요?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얼마전 한글판으로 국 내에 출시된 Make zine을 추천합니다. Digital geek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남이 만든 것 만을 소비하며 살고 있는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해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고 작업을 하다가 잠깐 Make 를 뒤적거릴 수 있는 당신은 정말 독특하고 멋진 신인 류랍니다.
런던통신 1931-1935 (버트런드 러셀, 사회평론)
_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문필가이자 20세기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수학자중 한명으로 평가받는 저자가 시대를 겪어내며 기록했던 칼럼의 모음집. 자본주의와 파시즘 전쟁, 공황 등을 치뤄낸 당시의 상황 들을 읽다보면 지금 우리네 일상의 키워드와 대부분 겹친다는 것이 오히려 낯설어 지면서, 대체 지금 우리 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은 어떤 시작점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100년전에 비해 얼마나 더 성숙해진 것인지 끊임없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좀 두껍기는 하지만 한 컬럼당 평균 4페이지로 구성되었으니 어디서든 움 직이며 읽기 좋은 분량.
** 효율적으로 책읽기에 대하여…
지금은 CD를 넘어 아이팟을 통한 디지털 컨텐츠가 대세이지만 한때, 카세트테이프에 좋아하는 곡들을 편 집/녹음해서 친구들에게 선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카세트 테이프는 지금의 아이팟처럼 셔플기능이나 곡 을 건너뛰는 것이 어려워서 처음부터 끝까지 쭈욱 이어 들을수밖에 없는 미디어였죠. 그러다 보니 녹음해주 는 사람의 편집 의도와 감성이 듣는 사람에도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 될 확률이 더 높았던 것 같습니다. 요즘 전자책eBook이 엄청난 기세로 대두되고 있고, 책의 요약본이나 챕터별로 뜯어서 파는 컨텐츠 몰에 대한 논의가 한창입니다. 하지만 디지털컨텐츠가 주는 다양한 효율성과 경제적 장점만큼이나 오랜 기간을 우리의 삶에 녹아내려온 아날로그적 미디어(테이트, 책과 같은)의 장점 또한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분절되 고 파편화되어 유통되는 디지털 컨텐츠가 우리의 사고에 주는 영향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면, 작가가 정 성들여 한 단어 한단어 써내려간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내고 그 ‘흐름’과 ‘맥락’을 이해해보는 독 서 행위가, 뚝뚝 끊어져 이해될 수 없는 우리네 인생이라는 타임라인을 살아냈고 살아가게되는데 얼마나 큰 힘이 될 것인지를 조심스레 주장해보고 싶습니다.
아무쪼록 이 가을 삶을 성숙시키는 좋은 시간들로 채워나가시길 기대해봅니다.
(Ceci 2009.11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