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텔미섬씽’의 도입부 – 음습한 해부실(702호)과 그 공간의 주요한 은유로서 그림 한 장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그것은 여러 인물들이 한 남자를 산 채로 가죽을 벗기는 엽기적인 장면의 그림인데, 플랑드르(오늘날 네델란드) 화가인 제라르 다비드(Gerard David, 1460∼1523)의 「캄비세스의 재판(Judgement of Cambyses)」이다.
헤로도투스(역사가)에 의하면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는 매우 방탕하고 냉혹한 폭군으로서 신성 모독적인 잔인한 짓을 많이 범했다고 한다. 살가죽을 벗기는 사람과 지켜보는 사람들이 묘사된 이 그림은 내게는 영화의 엽기적 분위기 조성이외에는, 한 사람의 살해에 여럿이 가담해 있을 가능성, 즉 수연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이 최초에 일어난 살인(수연 아버지)의 공범임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진다.
수 많은 코드들이 뒤섞여 브라운 운동을 하는 담배연기처럼 개별적으로 튀어 다니는 이 영화에서 내가 이 그림과 연관되어진 더 이상의 상상이 힘든 것은, 아마 여러 명의 시체에서 한 조각씩 떼어내어 한 사람을 만들려 했지만 결국 머리는 남겨둔 채 떠나버린 수연처럼, 감독도 열린 결말을 의식한 탓일런지 관객에게 모든 해석을 전가하는(?) 태도 때문일지 모른다.
뭐 내가 주제의식이 노골적으로 설명해대는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 일말의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재미있고 흥미있는 코드들간의 연결방식들이 지닌 고르지 않은 톤(너무 뻔하거나 너무 애매하거나)과, 영화전반을 통해 그것들을 끌고나가는 감독의 ‘힘’에 관련된 것이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해석가능성 그리고 관객의 반응과 이해, 이 고리에 대한 이야기는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니 오늘은 이만! 물론 제대로(?!) 읽지 못하는 이 모든 상황들이 나의 상상력과 추리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한다면 뭐, 굳이 변명할 생각은 없다. 쩝.
Gerard David는 1484년 현재의 네덜란드에 있는 Oudewater에서 태어났으며, 플랑드르파의 유명한 화가 얀 반 아이크(Jan van Eyck), Hans Memling 등 에게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대부분의 삶을 Bruges(현재는 벨기에의 한 지역)에서 보내면서, 그 지방의 공식화가로서 살았다. 주로 교회 제단 장식화로 많이 남아있는 그의 작품들은 풍부한 색채감을 지녔으면서도 엄숙하고 금욕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1498년 완성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캄비세스의 재판」은 이러한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벨기에 Bruge의 미술관(Musee Communal)에서 실물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