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가 만난 사람들 – 영화감독 김성호

처음 원고청탁을 받았을땐 무척이나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았다.영화에 대해 말한다는 것. 그것이 건축에 대해 말하는 하나의 방법임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영화와 건축에 대한 비교분석학적 논의들. 영화의 공간배경으로 드러나는 건축요소의 상징체계. 성적/권력적 담론들. 지난 수년간 나름대로 준비해 온 두 분야에 대한 학제적 논의를 더없이 현란하게 펼쳐보고 싶은 욕구가 불끈댔다. 이곳저곳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된 논의를 구조적으로 정리해보고픈, 다소 개인적인 욕망을 꺼내는 이런 행위가 또다른 마스터베이션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또 하나의 공허한 담론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이 곳에 던져진 우리들의 이야기를 만나고 싶어졌다. 우리의 시행착오를 긍정하고 필사적으로 쌓아가는 일이 다음에 벌어질 좀 더 다양하고 심도있는 논의의 출발점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aRchie
(월간 CONCEPT 2003.10 기고)

영화와 건축이 서로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 건축에서 영화로

aRchie : 대학을 졸업한 이후 설계사무소(TED)의 실무경력이 있었다. 그러다 영화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향했는데?
김성호 : 한마디로 하자면 건축하기가 싫어서였다. 건축을 하건 영화를 하건 무언가 만들고 보여주고.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데, 건축이라는 매체로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한계를 느꼈다. 디자인의 논리라는 것이 적어도 내게는 포장행위로 여겨졌고, 사용하는 사람들 혹은 보는 사람들이 이해할 것이냐? 하는 의구심이 늘 따라다녔다.

aRchie : 소통에 대한 방식. 혹은 해독가능성에 대한 문제였는가? 건축은 클라이언트와 늘 소통을 해야만하고 직접적인 반응이 늘 따라다니지 않는가.
김성호 : 클라이언트의 요구와 반응에 대한 기능적 소통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하고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직설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매체로서 영화가 보였고, 커뮤니케이션이 쌍방에서 이루어진며 피드백이 즉각적으로 온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파급효과가 크고, 반응을 볼수있는 루트가 다양하다는 점이 더 매력적이었다.

aRchie : 시스템의 문제이라 생각했었는지?
김성호 : 글쎄. (개인적) 전망의 문제인 듯 하다. 예전엔 민예총 강좌나 여기저기 건축가들의 강의가 있으면 열심히 찾아다녀도 보고 공모전도 해보고 그랬는데, 결국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잘 보이지가 않았다.

aRchie : 결국 건축을 하느냐. 아니냐를 선택한 것이다. ‘넘버3’였던가? 송강호의 “배신이야 배신. 배반~” 이런 대사 있잖냐. 이렇게 위대하고 훌륭한 건축판에서 떠나다니. 배신이다. 배신. (웃음) 김성호는 배신자? 혹은 도망자 인가?
김성호 : 젊은 혈기에 돈있는 클라이언트를 위해 끊임없이 사치스런 건물을 설계하기 위해 서비스하는 상황.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다. 좋은 건물을 짓는 훌륭한 건축가의 기본이 내게 있느냐라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삶이나 생활에 대한 나만의 생각이나 가능성들을 충분히 표현해내기에는 여러모로 거리가 느껴졌다. 반면에 영화판은 내게 세가지 정도의 이유로 크게 매력적이었다. 첫째. (개인적으로 처음엔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극장시스템으로 드러나는 영화매체의 힘은 오랜기간 공고히 만들어진것인데, 파시즘의 원형적인 형태이며,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형성이 되어있었다. 내가 하려고 한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강요할 수 있는 장이 형성되어있다는 것는데, 내가 과연 이 시스템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가 출발점이었고. 둘째, 이미 말한바대로 영화매체의 본질인 이야기를 훨씬 직접적으로 할수 있었다는 점. 셋째는 영화판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열린 장으로서의 성격이었다.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무진장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밖에 없는 환경이 생기며, 그러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내가 어떠한 위치에 있고 그 사람들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확연히 드러나게 되더라. 특히 영화제라는 특수한 상황을 보자면 이 모든 것이 한눈에 판도가 드러나는 장의 대표적인 형태이다. 시장이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그럴수도 있겠으나, 해외영화제이건 국내영화제이건 영화는 무엇이고 내 위상은 어떤지를 확인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좋은 마당이라고 느껴졌다.

aRchie : 거참. 어찌보면 참 부러운 이야기이다. 건축커뮤니티 내적으로 보면 잡지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매체 이슈이고, 결국 집단내의 자리매김 혹은 헤게모니에 대한 노력의 일환으로 비추어지기도 한다. 건축이라는 것이 어디를 가나 마주치는 것인데 우리는 대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약하다는 생각이다.
김성호 : 영화가 훨씬 많은 사람에게 인기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나?

aRchie : 건축이라는게 그렇게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운 대상인가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닐텐데 다수의 저변이나 대중적으로 감성적인 공감대 형성 노력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해왔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인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MBC 일요일일요일밤의 한 코너인 러브하우스는 소비자 대중에게 건축의 영향력을 알리는 첫 무대였던 것 같다.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하는 대사처럼 공간 변화가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올수 있음을. 그리고 그것이 사람의 감정을 흔들어 놓을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여주었다 (물론 공간자체보단 연출된 상황들의 감동이 더 컸다는걸 잊지는 말자)
재밌는건. 내 친구 어머니께서, 건축사시험을 준비하는 딸에게, 너 그거 따면 일요일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되는거냐.라고 말하셨단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는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해주는 사람들이 건축가라는 직능인데. (평생에 건축가를 통해 집짓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의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건축가의 그러한 역할에 대해 잘 인식을 못해왔다는 것은 사실일거다.
김성호 : 아마 세상에 건축가만큼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웃음)

 

찍으면 감독이다

aRchie : 함께 건축을 공부했던 친구들 중 건축직종에 종사하는 비율이 선배들에 비해 현저히 줄고있다. 건축을 매체로 본다면 많은 것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우리 세대로선 깝깝한 매체라서일까? 배우고,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가는데 너무나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직종이거나, 혹은 꾸준히 쌓아가는 깊이에 대한 우리 세대들의 한계이거나. 답답한 마음에 우리는 다양하게 선택가능한 장르를 통해서 자꾸 다른 종류의 해소방식을 찾고있는 것은 아닐까싶다.
영화판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을 주는지? 궁금하다. (영화판에서 김성호 감독의 위상은 건축실무를 하던 때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김성호 : 단편영화제를 99년에 7분짜리 영화를 처음 만들어서 처음 참석했었다. 소위 단편감독이라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모였다. 그들은 나름대로 한차례 걸러진 감독들이어서 자부심이 대단하였고, 무엇보다 주위에서 그것을 받쳐주더라. 나는 그저 7분짜리 영화를 하나 만들었을뿐인데 모두들 나를 감독님이라고 불러주더라. 당황스러울정도로 하루아침에 나는 감독이 되어 버렸다. 그냥. 처음에는 감독이라는 직위에 대해서 공고히 해주는 그런 시스템이, 뭐랄까 부담스럽고 어색했다. 영화판얘기로, 영화 하나를 만들면 그 사람은 평생 감독님이라는 거지.
어찌되었든, 영화제를 처음 갔을 때, 내 영화가 상영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다양한 확인 과정들이 생기더라. 관객들의 반응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고, 질문이 나오고 비평이 쏟아지고. 나름의 다양한 해석들이 무척 자극이 되고 좋았다. 적어도 내게는 건물이 설계되고 지어지고 받게되는 피드백 보다는, 영화를 통한 즉각적이고 엄청나게 다양한 – 아주 일반적인 사람들부터 전문 비평가들까지 – 많은 사람들의 반응을 볼수있다는 것이고 ‘재미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었다.

aRchie : 대조적으로 건축가로 커간다는 것은 어떤걸까하는 생각이 든다. 설계사무소에서 10년을 일한다고 소장이 되는게 아니라. 결국 소장이 될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차리는거 같다. 김성호 감독의 경우를 보면 단편 몇 편을 찍은후 시나리오를 하나 들고 왔는데, 80만을 모은 장편영화를 찍게 된 과정이, 건축계에서 보기에는 다소 파격적인 데뷔과정이라고 생각된다.
김성호 : 내 능력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아는 인맥도 없고. 대체 내가 몇 점짜리인지 모르겠고. 익숙해 온 건축적 방식으로 접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무조건 competition이었다. 첫번째 고민은 경제성. 돈이 없으니 큰 작품을 할 수 없고. 한 컷으로 가자. 결국 내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부를 해 왔거나 보아 온 영화들에는 없었던 새로운 방식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해석을 하건 재구성을 하건. 새로운 시각이 필요했고, 단편영화에서는 그것이 분명 가능하였다. 아주 쉽게 진입할 수 있는 길이 내게는 보였던 것이다.
그 이후에 장편영화를 하기 위한 목적으로 새로운 네트워킹을 시도했고, 내가 무엇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바로 시나리오였다. 첫째 상업적으로 가고자 하였고 둘째 나의 아이디어를 어필하기 위한 트리트먼트treatment나 프리젠테이션은 건축 트레이닝에 크게 기인한 것이다. 영화판에서 시작했던 사람들과는 크게 달랐을 것 같다. 출발은 좋았다.?

 

공인 영화감독

김성호 : 또 영화판이라는 곳에 들어와 가장 당황스러웠던 점 중의 하나는 자격증 시험이 없었다는 것이다. 영화감독에게 자격증이 없는 이유는 영화매체가 기본적으로 학습이나 정통적인 몇가지 방법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다양한 방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매체의 특성상 비쥬얼 혹은 이야기를 꾸며내는데 있어서 정말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 특히 지금은 디지털까지 나왔기 때문에 누구나 할 수 있는 베이스가 있기 때문에 모두가 경쟁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누가 어떻게 더 잘 하고 잘 보여 주는가하는 것은 아티스트적인 측면이 크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사람들에게 더 잘 보이고 특화시킬 수 있는가. 스폰서나 프로듀서를 잡아서 현실적으로 실현시킬수있는 것은 몇 개의 정해진 룰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이는 임권택 감독님처럼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몇십년 일하는 경우도 있고. 누군 시나리오 하나로 독립단편영화를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여러 가능성이 있지만 평가에 대해서는 강력한 장들이 그 사람들을 구별을 해준다.
aRchie : 내 보기엔 그런 평가의 장이 건축사 시험보다 더 무서운거 같다.
김성호 : 영화가 단편에서 상업영화로 가기까지는 건축과는 상당히 다른 루트가 있다. 글은 자기가 계속 쓸 수있고 이렇게 말하면 뭐하지만 설계도 원하면 그릴수야 있겠지만. 영화는 돈이나 배우, 기자재, 스탭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가없다. 어디가서 시나리오를 쓰거나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또한 상업영화를 찍게되면 극장수와 관객수와 해외배급과 영화제까지. 나에게 굉장한 만족감과 희열. 가능성을 주게되고 그 다음작품에 대한 기회나 나의 위치 용기 희망 등을 주게된다. 그런 시스템이 내게 재미있는 것이다. 내가 나 혼자만 볼 거라면 영화를 하지 않았을거다. 더 많은 사람들이, 혹은 더 오랫동안, 내가 만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욕구가 영화를 계속 하게되는 이유였다.

 

작업과정

aRchie : 첫 장편영화인 ‘거울속으로’를 보면서 아쉬었던 부분은, 한컷한컷 괜찮은 장면들의 전체적 연결은 그리 매끄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왠지 건축 잡지에서 보는 그럴 듯한 이미지의 공간들이, 살기는 좀 불편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자연스러운 연결 혹은 전체를 꿰뚫는 일관된 힘이 느껴지 못하였는데, 첫 장편 영화작업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점은?
김성호 : 결론적으로는 세상에 쉬운 일은 없고. 된다와 안된다의 차이를 정확히 경험한 것이었다. 실제 작업과정에 들어가자, 소위 이전에 내가 강점이 있다고 느낀 부분과는 다르게 연출이란 여러모로 다르더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감정이나 의식을 다루는 일이기 때문일까. 이 곳 까지는 그런대로 쉽게 왔는데, 여기서부턴 내가 이미 가진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더 어렵겠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비쥬얼로 만들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단순히 계획을 잘하거나 위계를 잘 만든다고 되는 것은 아니더라.

aRchie : 건축에서 느꼈던 표현의 한계를. 영화를 통해 어느정도 쉽게 풀수 있을 듯 했었는데. 결국 내가 전하고 싶은, 주장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다시 봉착하게 된 것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일테지만. 이 정도까지 밖에는 안되는건지. 새로운 방식은 없는지 하는 생각. 지금까지 관습적으로 해온 방식이 가장 빠르고 경제적이고 어느정도의 퀄리티가 보장되니까 결국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선택상황이 참 많다는 거지. 결국 이렇게만 하다가 죽는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까지 느껴질 때도 있다.
김성호 : 그래서 아마 영화 한편 찍고 끝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첫 영화에서 할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 다해버리고는 두번째부터 공백상태가 되어버리는 상태. 이제는 무얼 해야하나일 수도 있고… 90년대 초반과 중반 동안 5년간 영화공부를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인지. 맞는건지. 가치가 있는건지.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지금으로선 무언가를 확 이야기하고 싶지않다는 생각도 들고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첨엔 정말 멋져보였는데.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고 조심스러워 진다. 결국 평생 살면서, 작업하면서 고민해야 할 부분인 듯 싶다.

영화라는 매체는 내가 살면서 느끼는 사소하고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카메라가 잡아내주기 때문에, 특히 그것들이 사람들의 맘을 움직이는 것이라면 더 많은 고민과 경험이 쌓여야할 것같다. 노력은 기본이고 미숙함을 커버하는 방법도 찾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것. 하고싶은 것. 다른 것. 보여주지 못했던 것을 창조하는 기쁨을 가져가는 것이 가장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계속 그런 것을 추구하고싶다.

aRchie : 첫 영화를 마친 영화감독 김성호를 어떻게 PR할 수 있을까?
김성호 : 나름대로는 영화가 달랐고. 망하지는 않은… 감독.

 

영화의 시대 / 권력?

김성호 : 현대는 확실히 영화의 시대인 것 같다. 가장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체. 100년 밖에 안되었지만 그 힘이라는 것이 참 대단하다. 그런 매력이 디지털로 들어가면서 누구나 만들 수 있고 접근할 수있고, 극장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Home Theater/케이블/네트워킹이 강화된다면, 감독이라는 호칭도 언젠간 무너질 것 같기도 하다.
aRchie : 건축은 원래 권력층과 친한 매체였고. 권력이 대중에게 분산되면서, 중세의 교회건축처럼 거대 건축을 통해 대중들이 원하는 환상을 심어주는 일이 점점 불가능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영화를 통해 환상을 보는 시대인데, 개개인들이 표현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매체가 늘어나면 영화자체도 힘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
김성호 :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소규모의 작은 커뮤니티를 통해서 벌어질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쪽에선 또 퍼뜨리고 있다. 미국에서는 극장개봉을 위성 상영스크린으로 한단다. 그야말로 이제 영화한편 만들면 전세계로 쏜다는거다. 새로운 방법들이 나오고 있고 한쪽에선 인터넷으로 자기가 만든 영화를 상영하고. 다변화 되고 있는 상황이다.
aRchie : 하루빨리 김성호감독의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하고, 전세계로 동시상영되는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그만하면, 건축이든 영화든 하고싶은 대로 하게 되지않을까? (웃음)
김성호 : 결국 건축과 영화가 대화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영화로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건물을 짓는거 아닐까. (웃음)

aRchie.Epilogue

영화
많은 사람들이 마치 제의ritual처럼 영화관으로 향한다. 정해진 시간에 모여 앉아, 조명이 꺼지길 기다린다. 어둠이 주위를 감싸면 그들은 무의식의 문을 열고 화면을 응시한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와 인간세상을 떠도는 모든 종류의 감정, 욕망들이 이 어둠의 공간을 떠돈다. 새하얀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상을 같은 자세로 보고 있지만, 그들은 각기 서로 다른 감정과 생각들을 만난다. 다시 불이 켜지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느낌으로 현실의 공간을 향한다. 어떤 이는 시간과 돈이 아깝다고 하지만, 영화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괴로움을 딛고 일어설 용기와 희망을 얻거나, 자꾸만 잊게되는 꿈을 만날 수도 있다.

건축
건축은 살아가는 방식을 규정하는 틀을 만들어내는 공간예술이다. 태초에 황량한 벌판에 두발로 선 인간들이, 자신들의 인지능력을 넘어선 거대한 공간에 하나의 이정표로서 점(피라밋, 스톤헨지, 지구라트 등)을 찍을 줄 알게 되면서 문명은 시작된다. 구획과 경계라는 영역성 개념이 생긴 인간은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세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조직하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 조직 등, 삶의 양식이 분화 발달함에 따라 새로운 쓰임새의 공간조직이 필요하게 되었고, 새로운 건축 기술도 생기게 되었다.

권력의 역사
인간에 의해 고안된 공간들이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규율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이루어진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푸코(Michel Foucault)가「감시와 처벌」(1977)에서 다룬 권력관계와 억압에 대한 분석은 결국 공간배치와 시선의 문제였다. 즉, 특정한 공간의 배열방식과 반복적인 사용은, 개개의 주체생산방식과 연결되어 세상을 보는/보여지는 사고와 활동의 습속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 시킨다는 것이다. ‘역사는 스턴버그의 영화처럼 비연속적인 영상들로 진행1)되는 것’이라는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역사관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푸코는 그래서 옳은 것과 그른 것의 분류방식에 대한 지식과 역사를 탐구하였으며, 근대 이전과 이후의 주체생산의 비연속적인 변화에 대한 분석을 하였다. 그는 18세기 이전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2)고 제시하면서, 현재가 가장 진보된 시대라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현실의 양상에 대한 파악뿐만 아니라, 결국 우리가 보고있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이항대립적 판단이 불가능함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건축의 역사 역시, 변화를 주도하는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인 상황의 측면에서 서술되어 왔으며, 결국 이것은 권력/힘의 역사였다.

현대의 조건
오래전 도시의 인구가 적고 사람들의 활동분야가 세분화되지 않았던 시절. 광장에 모이고 성당에 들어가는 일련의 행위들이 의식화된 상황에서, 건축은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며(Architecture Parlante) 주요한 미디어로서 작용할 수 있었다. 현대를 대표하는 권력인 돈을 지닌 부유한 고객들만이 자신의 표현을 위해 건축을 이용한다. 일상의 건축은 점차 배경으로 사라져간다. 익명화된 대중들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찾아낸다. 인터넷. 그 곳에선 나를 중심으로 형성된 가상공간 네트워크가 현실 공간보다 훨씬 커진다. 아무리 자그마한 공간이라도 컴퓨터만 있으면 나의 세상은 링크되어 무한히 펼쳐져 있게 되는거다. 내가 느낄수 있는 세상의 범위는 이미 물리적 공간에 한정되지않고. 내 신체의 한계도 조금씩 벗어던지게 된다. 개인의 존재근거로서 공간의 조건이 변화하고 있다.

생은 다른 곳에
극장공간의 작은 좌석에 들어가면 영화 속 세계가, 조금씩 상상력으로 확장되면서 강력한 증폭파장으로 돌아온다. 중세의 어두컴컴한 성당에서의 느끼는 성스러움이 그러한 강력한 경험과 비교될 수 있을까? 건축을 통한 강력한 정서적, 영적 경험을 구현이란 점점 힘든 이야기가 되고있다. 건축재료는 크게 변화하지 않고, 중력의 한계는 언제나 존재했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구는 우릴 점점 가벼워지게 만들고, 새로운 시도는 우리의 환상세계를 넘지 못한다. 우리의 생은 정말 다른 곳에(Life is elsewhere) 있는걸까? 현재 우리의 모습에 대한 갈증들과, 왠지 해답이 다른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런걸까? 사람들은 왜 영화나 인터넷에 몰리는 걸까? 가상세계에서의 내 자리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버리고, 물리적 공간을 다루는 건축가의 존재의미도 점점 퇴색된다.

건축과 영화
인류문명과 함께 시작된 건축에 비하면, 영화의 발생은 겨우 100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두 예술의 종말은 결국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건축은 인간의 삶의 체험을 담고있으며, 영화는 인류의 무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건축 안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영화를 통해 무의식을 펼치는 것이다. 두가지 모두 인간의 존재이유(Raison d’etr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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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불한당들의 세계사」중 ‘냉혹한 살인자 빌 해리건’의 한 구절이다. 이 글에서 보르헤스는 어떤 영화감독이라고 했지만, Edgardo Cozarinsky의 「Borges inand/on Film」 (Lumen Books) 을 보면 Josef von Sternberg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2)「사물의 질서」에서 그는 18세기와 19세기에 신이 중심적 자리를 잃고, 앎의 근원이 인간이 되면서 – 인간이 인식의 대상이자 주체가 되면서 – 여러 지식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재검토는 당시 인문과학을 새로이 전면에 대두시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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