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 인터뷰. 컨셉진

April 3, 2017
April 3, 2017 ARCHIE

[ 컨셉진 Conceptzine 2017.4 Vol.45 당신은 지금 안녕한가요? ]편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삶은 안녕한가요?


질문이 많은 남자

글. 에디터 이혜인 l 사진. 포토그래퍼 김진영

 

돌이켜보면 나는 질문이 많은 아이는 아니었다. 질문은커녕 말수도 별로 없 었다. 그런데 지금은 질문을 가장 많이 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 사람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선 몇 가지 질문이 필요할까? 사실 질문의 개수는 중요치 않다. 답을 하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걸 생각하면 질문만 해온 삶이퍽슬프다가도 어떤 질문에 답을 한다는게 마냥 어렵게 느껴진다. 특히 ‘나’에 대한 질문은 더욱 그렇다. 그 질문의 끝에 명확한 답이 없으면 언젠가 해결해야 할 숙제를 안고 사는 것처럼 찝찝하다. 인생도서관엔 질문이 많은 남자가 있다. 그는 인생에 대한 질문을 엮어 책을 만들고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나는 질문이 많은 그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여기는 무슨 도서관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여긴 도서관이 아니다. 책을 빌릴 수도 없고 반납 또한 할수 없다.하지만 나자신이 한권의 책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인생도서관 대표 아키씨는 ‘한 사람의 인생은 곧 책이다’라는 뜻인 ‘Be a Book’ 프로젝트로 이 일을 시작했다. 책으로 풀어내는게 미디어적으로 이해가 쉬울 거란 판단이었 다. 그리고 그 배경엔 그의 아버지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아버지한테 물려받고 싶은 유산이 있어요. 제가 모르는 아버지의 인생이 담긴 책이요. 어쩌면 영원히 모른채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잘 안됐어요. 아버지가 너무 쓸게 많아서 오히려 못쓰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걸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게 툴킷이에요. 탄생부터 현재까지 트랙별로 나누어 삶을 조망하고 정리하는거예요. 마지막엔 완성된 것들을 서로 나누고 교류합니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삶과 우주의 모습이에요.”

 


인생도서관엔 여러 프로그램이 있다. 무언가를 만들고 그리는 라이프스타일 클래스와 자신의 생각을 글, 영상, 몸으로 표현하는 미디어클래스 그리고 일과삶에 관한 클래스가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설명해야 할 것이 있다.바로 그가 만든 툴킷. 툴킷은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진다. 개인의 삶을 정리하는 미트릭스(ME:TRIX)와 커플, 가족 등 2인 이상이 함께 하는 위트릭스(WE:TRIX). 미트릭스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반면 위트릭스는 미처 알지 못했던 타인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종이 한 장으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는 사건을 글로 나열했을때 대화가 원활해진다고 했다. 공통의 틀을 바탕으로 작성한 자료를 서로 교환해서 보면,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 있지만 전혀 다른 감정과 지향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고, 오히려 그 차이를 느끼 면서 소통할 수 있다는 말.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오해를 풀지 않으면 일차원적으로 인지한 상대방의 모습밖에 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이 생각한 그 모습이 아닐때 실망하고 싸우는 것이다. 그는 노트에 열심히 필기를 하며 설명했다. “사실로써 나열하다 보면 조금은 덜 감정적일 수 있어요. 왜냐하면 일단 대화를 하면, 현실에서 부딪힌 그 감정이 전부처럼 느껴져서 감정적으로 대하게 되거든요. 관점을 바꿔 정보위주로 살피면 대화할 수 있는 단초가 생겨요.”

 


문득 상담소나 용한 점집에 온 기분이 들었다. 그가 하는 말에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이다. 물론 그의 모든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 고민하는게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나는 시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저는 삶을 전체로 인식함으로써 얻는 것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거예요. 그렇게 됐을때 삶에 대한 태도와 시간에 대한 관념이 달라지거든요. 최근에 개봉한 영화 <컨택트>가 저의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해요. 영화 마지막엔, 만약 당신이 인생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다면 무엇을 바꿀 것인가 묻죠. 미트릭스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어떤 맥락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조금은 알 수 있다는거죠.

 

인생도서관은 우리가 살아온 것을 교류하는 곳이지만 결국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곳이기도 해요.” 인터뷰가 생각보다 길어져서 나의 얘기는 생략했지만 며칠 전에 본 <자유의언덕>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그 영화에서도 시간에 대한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시간은 우리 몸이나 이 탁자같은 실체가 아닙니다. 우리 뇌가 과거, 현재, 미래란 시간의 틀을 만들어내는거죠.하지만 우리가 꼭 그런 틀을 통해 삶을 경험할 필요는 없습니다.”

 


정말 인간의 무의식이 시간의 틀을 만들었다면, 그것을 깨고 나왔을 때 우리의 시야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궁금했다. 그리고 이런 의문도 들었다. 과연 나의 미래를 점쳐 볼 수 있는건 좋은일인가. 사실 나는 미래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고 싶은 사람이다. 오로지 과거만 중요한 사람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무엇이 됐든 자신의 삶과 멀찍이 떨어져 지켜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내가어떤유형의사람인지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가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대상과 관점을 바꾸면 그렇지 않다는걸 느껴요. 앞에 있는 사람과 공간에 따라 양상이 바뀌는 것 처럼요. 그렇다면 고정된 내가 있는가 의심을 한번 해 보는 거예요. 제 생각엔 변하지 않는 특질이 있다면 나머지는 이 여섯 가지 트랙(공간, 개념, 사람, 사물, 콘텐 츠, 일)의 조합에 의해 다른 양상으로 발현되는 것 같아요. 그럼 그 반응은 내가 만드는 것인가, 누군가 주입한 것인가 물어보는 거예요.

 

내가 한 생각이나 개념이 어렸을때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 축적된 것인가, 혹시 그게 아니라면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내 인생을 살고 있기는 한건가, 인생의 목표도 좋고 비전도 좋고 다 좋은데 과연 한 개인이 독특한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 묻는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다른사람들이 좋다는 걸 믿고 내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거겠죠.” 아키씨는 우리의 삶이 고단한 건 적응하느라 그렇다고 했다. 자신의 입장에서 재편하고 경영하는게 아니라 누군가 쥐여준 것에 적응하느라 힘든 거라고. 맞는 말이다. 주체적이지 못한 사람 들은 누군가에게 고용당한다. 이건 일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에 반하는 이가 있으면 어떻게서든 고용하려 든다. 누군가는 고용당하고 누군가는 고용을 거부한다. 누가 더 행복할 것인가의 판단은 명확지 않다. 중요한 건 고용당할지라도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조건 적응만 한다면 나의 기준은 죽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어떻게 정의하는가? 방법은 하나다. 스스로에 대해 잘 아는 도리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인생질문》이라는 책을만들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끊임없이 물었던 질문 168개를 담았다. ‘살면서 차츰 변해온신념이있나요?’, ‘매일 밤 잠들기 전 마음속에 맴도는 말이 있나요?’, ‘용서받고 싶은 사람이 있나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번쯤 생각해보았던 질문들. 하지만 그것에 답한 적이 있냐고 물으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솔직하게 쓴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거니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한테 가장 솔직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문득문득 피어나는 의문들을 마음 속에 묻어 버리는 것 일지도 모른다. 질문을 하는건 보이는 그대로를 믿지않고 의심을 하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현상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니까. 오류를 발견하면 고쳐야 하는데, 사람들은 그 행위를 가장 두려워한다. 먼지 묻은 안경을 한 번 닦고 보는 일인데, 그게 참 어려운 것이다.

 

나는 그가 하는 일이 상담사 같기도 하고 사서司書 같기도 했다. 누군가의 삶이 적힌 책을 보관하고 돌보는 일을 하니까. 어쩌면 그의 말대로 이곳은 도서관이 맞는지도 모른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바람을 말했다. “저는 인생도서관이 동네마다 하나씩 생기기를 희망해요. 그래서 각자 자신의 책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한 권 밖에 없는 그 책을 고향에 두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그걸 보러 여행 다닐 수도 있고, 지역 커뮤니티가 될 수도 있겠죠. 사람들은 쌓아두는 건 잘하는데 정리하는 건 잘 못해요.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게 인생도서관의 역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