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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 2010
August 1, 2010 ARCHIE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 1926~84)는 ‘감시와 처벌’(1975)에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 공간들이 다시 인간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 힘을 발휘하는지에 대한 심도있는 통찰을 하고 있다. ‘감옥의 탄생’ 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그는 형벌제도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통해 근대적 감옥 혹은 감시체제의 탄생과 메커니즘을 치밀하게 고찰한다.

PanOpticon

그가 예시한 18세기 제레미 벤담 설계의 ‘판옵티콘Panopticon’은 용어그대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시선/본다’를 의미하는 opticon의 합성어로서 1명의 감시자가 다수의 죄수를 감시할 수있는 원형감옥을 말한다. 중앙의 감시탑은 늘 어둡고 주변 죄수의 방은 밝게하여 감시자가 있는지 없는지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게 만들어, 모른다는 이 사실때문에 죄수들은 늘 감시받고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결국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하여 스스로를 감시하게 되는 시스템이다.
결국 푸코는 시선을 앎의 문제로 보고 시선의 불균형이 앎의 불균형을 낳게되고 결국 권력의 불균형을 탄생시켜, 감시자가 없다해도 스스로를 감시하게 되는 원리가 근대이후 사회 전반에 작동하여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감시를 하는 새로운 지배 기술로 세련화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렇듯 실제 공간의 특정한 배열방식과 반복적인 사용을 시선의 문제와 연결하여 개인의 주체생산방식으로 해석한 푸코는 18세기 이전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감옥과 같은 처벌공간만이 아니라 군대, 학교, 공장 등 감옥밖의 사회 공간까지 이러한 시스템은 확장되어 권력의 의도대로 행동을 훈련하고 규율을 내면화하는 권력의 그물망안에 있다는 즉 신체의 작동을 지배하게되는 것이다.

인터넷 기술등에 의한 개인화 정보의 집적은 비록 감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개인의 프라이버시와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있는 것이다. 마크 포스터는 이러한 개인화 DB의 확장을 수퍼판옵티콘이라 부르고 있다.

기본적으로 1대 多(소수에서 다수로)의 구조로 작동하는 권력모델이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용이해져기술이 빅브라더로서 작동할 것을 두려워하는 이론이 인터넷 발전 초기에 많았으나, 이후 점차 상반되는 개념들이 등장하게 된다. 이른바 ‘역판온티콘(reverse panopticon)’ 혹은 ‘시놉티콘(synopticon)’이 그 것인데, 정보통신 네트워크 구조가 多대多(many to many)의 구조로 작동하면서 감시하는 자와 감시받는 자가 동시에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구조로 작동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다양한 디바이스가 저렴한 가격으로 보급되면서 매스미디어가 아닌 개인미디어들이 보편화되는 최근의 시점에는 더욱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쉽다.
어찌보면 시선의 문제를, 감시와 프라이버시 통제라는 권력적 개념으로 해석하는 일은 이미 진부한 개념일 수 있다. 시간은 흘렀고 사회구성원의 의식 또한 많이 변하고 있다. 시선을 받기를 즐기며 프라이버시를 적절한 수준에서 포기하는 대중의 등장과 더불어 새로운 틀로서 해석해야할 필요성이 대두된다.

최근 손정의는 그의 트위터에서 트위터의 집단지성을 일컬어 좌뇌, 우뇌에 이어 외뇌(外腦)를 얻은 것 같다고 말한바 있다.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순식간에 정보의 확산이 가능하며, 하나의 사실에 대해 다양한 관점으로 전체적 맥락을 볼 수 있는 이러한 상황을 이론가들은 홀롭티시즘(holopticism)으로 해석하고 있다. 홀롭틱은 전체(whole, holistic)를 뜻하는 holos와 optike, techne의 합성어로, 파리의 겹눈 즉, 수백개의 홑눈이 겹쳐져 붙어있는 복안(複眼)구조를 생각하면 되는데, 정보량이나 정확성의 문제라기 보다는 공동체를 둘러싼 전채맥락을 이해하고 서로 영향을 주며 함께 흐름을 만들어 가는데 있다고 하겠다. 결국 기술과 시선의 문제는 실체적 공간에서 뿐 아니라 결국 사고 구조에도 영향을 주며, 가상과 실재사이의 지속적인 역학적 피드백을 통해 서로 변화해간다.
나날이 정보는 넘쳐나고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 조차 알수 없게 되어가며, 선택의 기준 조차 모호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러한 시스템의 속성과 구조도 잘 알아야하고, 그속에서 스스로의 행복도 찾아야한다. 쉽지는 않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있다. 공유와 개방이 우리를 점차 혼돈으로 이끌고 있는 것 만 같기도 하다.

정권의 민간인 사찰이 이슈가 대두되고 있는 요즈음, 다시 프라이버시의 소중함이 대두된다. ‘자기만의 공간’이란 결국 권력의 침해를 받지말아야하는 기본생존권으로서도 그러하며, 외부적 시선을 차단하고 자기 내면을 향하는 통찰의 시선을 유지하는 환경도 의마한다.
아이들 동화에 나오듯, 누구나 온전히 자신을 돌아볼 수있는 ‘비밀의 방’이 필요한 법이다.

(월간 브뤼트Brut 2010.07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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