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테크칼럼 Tech+ [ IMAGINATION ]

July 1, 2010
July 1, 2010 ARCHIE

나이를 먹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공상과학은 불가능한 상상속의 이야기라는 것을 사실로 받아 들이고 살아가는 것 같다. ‘정상적’ 어른이란 비현실적 환상을 포기하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일테니까. 하지만 과학과 기술에 대한 지식을 어느정도 갖추고 있다면 상상 중에서 가능과 불가능의 영역을 구분할 수 있으며, 그 불가능도 결국 현재의 기술로 불가능한 것일 뿐 결국 어느 시점에 가능할 것이냐라는 시간 예측의 이슈가 된다.

우리에게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등으로 유명한 쥘 베른(Jules Verne, 1828~1905)이 1863년 쓴 소설 <20세기의 파리>는 100년이 넘게 서류함 속에 묻혀있다가, 증손자에게 우연히 발견되어 1994년 처음 출판되었다. 이 소설에서 쥘 베른은 1960년대의 파리의 모습을 예견하는데, 그 내용이 놀라울 따름 이다. 전세계를 연결하는 통신망(지금의 인터넷), 팩스, 유리로 지어진 초고층 건물, 가스 자동차, 초고속 열차 등 당대에는 불가능으로 여겨졌던 기술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있다. 소설가인 그는 단순히 상상력만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당대의 과학자들과 끊임없이 교류하며 기초과학의 특성과 한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 고 있었다.

마크 트웨인 @ 테슬라 연구실,1894

앞서 Airnergy를 소개하며 언급한 테슬라의 별명은 ‘전기의 마술사’였다. 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음모론이 존재하지만, 직류신봉자였던 에디슨과 달리 교류시스템을 발명하여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전기시스템의 기본을 확립하고 원격 조정, 무선 전신, 무선 전기 송신 등 당대로서는 불가능했던 마술과 같은 기술을 개발한 실존인 물이며, 자속밀도의 국제단위인 테슬라(T) 역시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중년에 들어 테슬라와 마크 트웨인(Mark Twain) 은 친구가 되는데, 상상력이 풍부한 소설가와 마술사와도 같은 발명가의 이 만남은 나로선 몹시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마크 트웨인은 “천둥은 그럴싸하고 인상적이 다. 하지만 정작 일을 해내는 것은 번개이다.”라는 말을 남긴적이 있는데, 내게는 이말이 개념적 상상력과 현실화를 위한 실천력간의 관 계를 설명하는 문구처럼 들리기도 한다.

화이트(T.H.White)의 소설 <과거와 미래의 왕 The Once and Future King>에는 “금지되지 않은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구절이 있다. 결국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함을 증명할 수 없는한, 가능할 수 있다라는 말과 같다. 인류 역사 특히 과학과 기술의 역사는 그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며, 개인의 역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최근 다양한 20, 30대의 친구들과 얘기나누다 보면, 자신이 꿈꾸는 상황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많은 걱정과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현실은 우리를 재단하며 욕구를 누른채 적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가끔은 나의 환경 을 바꾸면 모든 것이 변할 것 같은 기대로 새로 운 환경으로 이동해보지만, 그곳의 현실 역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좌절하는 친 구들 역시 많이 보인다.

이럴땐, 책장에 꽂혀 있던 공상과학(Science Fiction)시리즈를 탐독하던 어린시절을 한번 떠올려 보자. 현실과 불가능한 상상에 대한 인식적 경계 불명확하던 그 시절 당신은 무엇을 꿈꾸었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또렷히 느껴보는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꿈꾸는 구름위의 상상을 이 땅의 현실로 내리기 위해 필요한 많은 과학적-기술적 사고와 지혜의 토대를 너무 등안시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인문학과 기술과학의 균형이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점점 더 필요한 일인 것 같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대체로 마술과 같다”고 쓴 아서 클라크(Arthur C. Clark)과 “새로운 아이디어에 엉뚱한 구석이 없으면 그 아이디어는 별로 희망이 없다.”는 아인슈타인이, 우리 내부에서 즐겁게 만날 수 있는 그런 날이 몹시 절절하게 기다려지는 뜨거운 여름의 초입이다. 숙제로서가 아니라 자연스런 사고의 스펙트럼에서 통섭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바탕 위에 엉뚱한 상상과 그 것을 몸으로 실천해나가는 사람들을 주위에서 점점 더 자주 보게되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월간 브뤼트Brut 2010.06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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