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글만 있는 나의 책 “영화속 건축이야기”

By aRchie  -  On 15 Feb, 2009 -  0 comments

써야지써야지 하면서 아직 쓰여지지 않은 책. ‘영화속 건축이야기’
예전 원고들을 뒤지다보니 10년전에 이미 들어가는 말은 써두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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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래전의 기억이다. 무엇인지 조차 스스로 알수없이 이글대던 열정들을 교실에서 삭일수밖에 없었던 우리의 고교시절이었다. ‘자율’학습을 마치고 콩나물 시루를 벗어나면, 깜깜해진 세상은 그제서야 우리들을 선선한 바람으로 맞이해줬다. 벤취에 걸터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달아오른 머리를 식히면서, 나와 H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스스로를 표현할 길이 너무나 제한된 우리의 현실에서 우리가 발견한 탈출구. 그건 영화였다. 영화를 통해 사람과 이야기, 음악을 이야기할 수있었고 무엇보다 언젠가 지어질 우리의 영화박물관을 상상하며 미래에 대한 꿈을 꿀수있었다.
대학을 마치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는 친구들도 생긴다. 그렇듯 시간은 흘러간다. 띄엄띄엄 만나게되는 H의 모습이 조금씩 낯설어 짐을 느끼면서, 가슴속에 많은 의문들이 떠오른다. 이루어지는 꿈을 함께 믿던 그 시절, 우리들의 이야기는 현실적인 힘으로 우릴 지탱해주었지만, 이젠 그에게서 점점 힘을 잃어감을 느낀다. 오히려 꿈이란 아직 ‘철들지’ 못한 녀석의 현실도피의 수단인 것처럼 여겨진다. 이성의 이데올로기가 꿈을 현실에서 살아숨쉬지 못하게 하며 우리의 무의식으로 자꾸만 밀어내고 있을 때, 오늘도 나는 영화를 보며, 저 깊은 무의식속에서 소용돌이치는 꿈들을 만나곤 한다.

나의 전공은 건축이다. 건축일을 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나의 오래된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들은 점점 커져만 왔고, 결국 건축과 영화를 함께 엮어보고싶은 욕구에 이르렀다. 지나치게 많은 아마추어들이 영화비평가를 자처하는 현실을 부정적으로 보던 내가 영화에 대한 글을 쓸 것을 결심하면서, 이도저도아닌 어정쩡한 책을 하나 내놓게되지나 않을지 많이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의 배경으로 사용되는 건축공간을 다루는 직업을 가진 특성을 살려 영화를 보는 또하나의 시각을 제시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뚜렷해지면서 용기를 내어본다.

기본적으로, 이 책은 학문적 연구서가 아니다. 대상 역시 특정한 전공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개인적인 궁금증들을 정리해 보려고 시작된 이 작업이, 지나치게 어려운 영화비평의 무게에 싫증난 많은 보통의 사람들에게도 공유될 수있기를 바라면서, 영화와 건축에 대해 잠시라도 애정을 지녀보았던 일반인들이라면 누구나 ‘즐길수’ 있는 책이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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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의 글을 지금 다시 읽어보니 좀 쑥스럽기도 하고, 생각도 좀 변했다.
책이 나오게 되면 머릿글은 다시 쓸 것 같다. 근데, 머릿글도 있고 목차도 있는 이 책은 대체 언제쯤 나오게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