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ion Protocol : 시온의정서 14~24

by aRchie  -  On 08 Jul, 2006 -  0 comments

제14의 의정

우리들의 세계 지배가 완성되었을 때에는 우리의 일신교 이외에는 어떠한 종교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 유일의 신과 계약하여 그 선민이 되고 이 신에 의하여 우리의 운명이 세계의 운명과 마주 이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들은 모든 다른 종교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때문에 일시적 현상으로서 무신론, 무종교 시대가 나타나게 될 지도 모르나 그것은 과도적인 것이며 우리의 목적을 방해하는 것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세의 종교에 귀를 기울이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알맞은 본보기가 된다. 그리고 우리의 가르침에 따른 예언은 그들을 납득시키고 이 종교의 깊고 강함에 따르게 함으로써 세계의 모든 사람을 신종케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성공도 이 가르침의 신비에 의한 것이며 일체의 인류에 미치는 교육의 힘도 여기에 바탕을 둔 것이다.

우리들은 모든 기회에 우리의 성스러운 체제의 은총과 과거의 폐해를 비교한 논문을 공표한다. 수세기에 걸치는 소란 이후 겨우 얻게 된 평화이고 보면 더욱 더 우리 지배의 은총을 깨닫게 된다는 말이다. 비유태인의 정치 결점을 남김 없이 그려내고 악정에의 강한 혐오의 정을 북돋운다. 이로써 인민은 명목만의 자유의 권리로부터 안락하게 살 수 있는 노예의 편이 더욱 낫다고 생각하게끔 된다. 사실 자유의 권리라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인민을 고생시키고, 생활의 길을 빼앗고, 스스로의 죄를 모르는 엉터리 꾼들이 착취를 제멋대로 할 수 있게끔 했었다.

우리들이 비유태인의 국가를 뒤엎어 버리기 위해서 몇 번인가 그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무의미한 혁명에 대해서 그들은 이제는 싫증을 느끼고 있으므로 그들은 무엇이건 참고 견디게 된다. 그래서 우리로부터 아무리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되더라도 투쟁이나 폭동의 잔학함만은 제발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몇 세기나 거치면서 비유태인 정부가 참된 인간의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지도 못하고 허수아비 같은 사회 복지를 뒤따라 인민을 고생시켜 온 역사적인 오류를 적발한다. 실제 그들의 과거의 정책으로 해서 사회 관계는 보다 더 좋게 되기는커녕 악화 일로를 걸어왔었는데 그것을 놓치고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정책은 그러한 퇴폐한 구체제에 대해서 명료한 대조로써 보여 주게 되므로 더욱 광채를 내게 될 것이다. 우리의 신학자는 비유태인의 종교의 모든 결함을 지적하겠지만 그 누구도 우리의 종교의 진리는 비판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들 이외에는 유태교를 근본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고, 우리 동족은 우리의 종교의 비의를 결코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이른바 선진 제국에 있어서 부도덕하고 열악한 사이비 문학을 만들어 두었지만 우리들의 세계 지배 후에도 당분간은 그대로 내버려둘 것이다. 그것은 우리들의 숭고한 이상과 그 추악과의 대비를 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비유태인의 지도를 위해 교육해 둔 우리의 현자들은 연설, 계획, 회상록 같은 것을 쓸 것이다. 그것으로 민심에 세력을 부식하고 우리의 학문과 사상의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다.

제15의 의정

우리들이 세계 각국에 혁명을 동시에 발발 시키고 현재 정부의 무력함이 결정적으로 되었을 때부터 우리의 시대는 시작된다. 하지만 여기까지에는 아직도 상당한 세월 아마도 거의 1세기는 더 걸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권력이 확립되었을 경우에는 우리에게 대해서 반역이 일어나지 않게끔 경계를 단단히 해야만 된다.

무장봉기하는 자들은 가차없이 모두 죽여 버린다. 새로이 비밀 결사를 만드는 자도 마찬가지로 사형에 처한다. 현재의 비밀 결사는 우리가 승인했고 우리의 도움이 되고 있지만 이것도 모두 해산해 버린다. 결사원은 유럽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벽지에 추방해 버리게 될 것이다. 우리의 내정을 잘 알고 있는 비유태계의 프리 메이슨 결사원에 대해서는 먼저 처치를 한다. 그 어떤 이유 때문에 용서를 해 주었던 프리 메이슨 결사원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국외 추방을 할 것이라고 끊임없이 위협을 해 둔다. 어쨌든 이제까지 비밀 결사에 속해 있던 자는 우리 정치의 중심인 유럽으로부터 내어 쫓을 신법률을 시행할 것이다.

우리의 정부의 결정은 최종적인 것으로서 공소도 탄원도 허용될 수 없다. 우리들이 불화와 소란의 뿌리를 깊이 심어 두었던 비유태인 사회에 평화와 질서를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준엄한 힘에 의하는 것 이외의 방법은 없다. 우리에게는 도저히 반항할 수 없다는 것을 철권에 의해서 보여 주어야 한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라면 어떠한 희생자를 내게 되건 조금도 꺼릴 필요는 없다. 정부의 존재 이유라는 것은 특권의 옹호가 아니라 의무를 다하는 데 있다. 따라서 행복을 확보하는 의무를 위해서라면 학살도 감히 불사해야 한다.

정부가 기초를 굳히기 위해서는 권력의 위광을 강화해야만 한다. 그런데 신비적이며 흔들림이 없는 권력의 지각이 가장 드높아지는 것은 이를테면 ‘신의 선민’과 같이 그 원천이 신으로부터 나오고 있는 경우일 뿐이다. 로마 교황청을 제외하고는 최근까지 그러한 위력을 지니고 있던 것은 제정 러시아였고 따라서 츠아는 로마 교황과 더불어 우리의 최대의 적이었다.

제군 고대 로마의 독재관 스라를 상기해 보라 그는 이태리를 피의 바다로 만들었지만 이태리인들은 스라의 머리카락 하나도 건드리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 아닌가. 스라가 학대한 인민은 그를 신과 같이 떠받들었다. 그것은 그가 비할 바 없이 완벽한 권력을 확립했었기 때문이다. 그가 화려하게 이태리에 돌아왔을 때 인민은 그를 불가침의 것으로 만들었다. 용기와 침착으로 인민을 위압해 버린다면 그 누구도 반항 같은 것은 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의 시대가 도래하기까지는 앞서 말한 바와는 반대로 세계의 어느 곳에나 프리 메이슨 결사를 더욱 늘여야만 한다. 이 결사에는 사회적 지명도가 높은 자, 혹은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을 가입시킨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주요한 정보 수집 기관이며 이것을 가지로 해서 크나큰 영향력을 사회에 미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결사는 우리들만이 알고 있는 현자들의 지하 사령부에 통할 된다. 각 결사의 대표 한 사람만이 지하 사령부 즉 유태의 현자들과 비밀의 연락을 보전하고 표어나 계획을 받게 된다. 결사에는 모든 혁명적, 자유주의적인 요소가 모이고 사회 각층의 대표가 모인다. 따라서 어떠한 정치적인 비밀 계획도 곧 우리가 알게 되고 우리의 지도 하에 들어오게 된다. 국가 경찰, 국제 경찰의 스파이들도 결사의 회원으로 가입시킨다.

아제프 사건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이 우리들에게 있어서 불가결의 존재인 것이다. 경찰은 우리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에 대해서 수단을 강구해 주며 우리의 행동을 숨기고 불평의 구실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비밀 결사에 들어오게 되는 자는 대개의 경우 야심가가 아니면 엉터리, 사기꾼, 일반적으로 경박한 자들이다. 그러니까 그들을 우리들의 계획에 동조케 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세계에서 반란이 일어나면 그것은 비유태인 국가의 강한 조직을 파괴하기 위해서 우리들이 그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며 그 배후에 음모가 있었다고 한다면 그 간부에는 반드시 우리의 충실한 심부름꾼이 끼어 있다. 프리 메이슨을 지도하는 것은 우리들 유태인뿐이다. 왜냐하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를 알고 있는 것은 우리들뿐이기 때문이다. 비유태인은 아무 것도 모른다. 그야말로 나중에 어떻게 될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자그마한 야심을 일시적으로 만족시키는 것만으로 움직이고 있다.

또한 그 행위가 우리에게서 암시를 받은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먼저 호기심에서 프리 메이슨에 든다. 또한 어떤 자는 결사의 도움으로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고 희망한다. 그 가운데는 실현 불가능한 꿈을 이루어 보려는 충동에 쫓기어 가맹하는 자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성공과 박수를 주는 일에 결코 인색하지는 않다. 그것은 성공했을 때에 그들의 만족을 우리의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서 이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런 경계도 없이 우리의 속삭임을 받아들이고 거기에다 그것이 그 자신의 생각해 낸 창조적인 사상인 것처럼 착각하기가 쉽다. 또한 그들은 조그마한 실패가 있으면 곧 깊이 낙심을 하는데 이럴 때 새로운 성공을 약속해 주기라도 할지 면 노예와 같이 우리에게 복종을 해 오는 것이다. 우리들 유태인은 자그마한 성공으로 기분이 좋아지거나 하는 일은 없고 소기의 계획을 관철하는 것만을 생각하지만 그들은 이와 정반대로 외면적 성공에 취해서 핵심인 계획은 잊어버리고 만다.

이러한 심리 상태가 우리들의 틈탈 바, 빈틈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바깥 모양은 호랑이와 같지만 마음은 양과 같은 것이다. 거기다 머리 속은 텅 비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의 뇌에다 어느 망상을 주입했다. 즉 개개의 개인은 전체라는 개념에 몸을 담가야 한다는 집단주의의 꿈이다.

그들에게는 이 사상이 자연 법칙에 배리 되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 천지 창조의 처음부터 자연은 여러 가지 능력이 다른 것을 만들고, 개성에다 의미를 지니게 하였다. 이러한 것도 모른 대서야 도저히 그들의 지능은 우리의 적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 옛날 우리의 현자는 이렇게 말했다.‘고상한 이상을 이룩하는 데 수단을 망설이지 말라. 희생을 아끼지 않을 때만이 그것은 이룩될지니라.’

이것은 선견의 명이다. 우리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우리의 가축에 불과한 비유태인의 희생을 헤아려 보기조차 하지 않았다. 또한 동족으로부터의 희생도 많이 내었다. 그 대신 그들이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만큼의 터전을 지금 쌓아올렸지 않은가. 우리 동족의 희생은 적고 우리 민족은 멸망을 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죽음은 모든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종말이다. 따라서 새로운 세계의 체제를 창시하려고 하는 우리들에게 죽음이 찾아 드는 것을 기다리느니 차라리 우리들의 성업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죽음을 재촉해 주는 편이 낫다.

우리가 프리 메이슨 결사원에게 사형을 가할 때 누구에게도 알 수 없게 하며 본인 자신도 그 죽음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차례 차례로 죽이는 일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누구도 평안한 자연사와 같이 숨을 거둘 것이다. 진상을 알게 되는 결사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 한 사람 이의는 내세우지 않는다. 이러한 엄벌주의로써 우리는 결사 내의 반항을 모조리 싹이 트기 전에 잘라 버렸다.

우리들은 비유태인에게는 자유주의를 불어 넣지만 우리 동족과 결사의 한 무리에게는 철의 규율로써 절대 복종을 강제한다. 우리들은 비유태인 법률의 시행을 최소한의 것으로 막아 버렸다. 법의 권위는 우리들이 불어 놓은 자유주의적 해석이란 물건으로 땅에 떨어졌다. 가장 중요한 헌법상의 의의, 그 밖의 근본적 문제의 다툼에 있어서는 우리들의 생각대로 재판소는 판결을 내릴 것이다. 이것은 재판소에만 한한 일은 아니다. 행정 관청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다 우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이는 중립적 인물이나, 신문 논조를 이용하는 것이다. 양식 있는 참의원의 높은 양반들도 고급 관료마저 우리 뜻대로 된다. 비유태인의 동물적 두뇌에는 사물을 분석하고 관찰하는 능력은 없다. 하물며 결정된 사실이 어떠한 광범한 영향을 가져 올 것인가 하는 것과 같은 것은 도저히 예견할 수 없다. 유태인과 비유태인에는 이렇듯 천성의 자질에 차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에게 뽑힌 백성’인 것이 분명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은 사물을 볼 뿐 예견은 못한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발명할 능력도 없다. 이러한 사실을 가지고서도 우리의 세계 지배는 자연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들이 공공연하게 세계의 지배권을 확립했을 때에는 그 성과를 바탕으로 삼고 우리의 은혜를 나타내기 위해서도 일체의 법률을 변혁할 것이다. 우리들의 법률은 간결, 명료, 그리고 확정적이어서 이것 저것 해석에 골치를 앓을 필요가 없다. 따라서 누구라도 이 법률을 정확하게 이해를 할 수 있다.

이 원칙에 따라 누구나가 예외 없이 최고 권위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되고 모든 권력 남용을 파악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하급 관료에 의한 직권 남용에도 극히 엄격한 처벌을 하게 되므로 누구도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된다. 우리들은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꾀해야만 될 관료의 행동을 가장 엄중하게 감시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부패는 연쇄적으로 넓혀지고 사회 일반의 풍토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떠한 자그마한 법률 위반, 부패 행위도 철저하게 처벌을 해야 한다. 가혹한 처벌을 보기만 한다면 관료의 태만이나 서로가 부패를 묵인하는 짓은 없어지고 말 것이 틀림없다. 우리의 권위를 보전하기 위해 사리사욕으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서는 특히 최고형으로 다스릴 것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너무나 가혹하다고 느껴지겠지만 그는 국가의 정치라고 하는 전장에서 전사한 병사와 같은 것이다. 개인적 이익을 공공의 생활에서 꾀한다는 것은 지배자 측이라고 하더라도 허용될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재판관은 피고에 대한 어리석은 관대함이 국법의 기본 원칙을 파괴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재판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징계적인 본보기를 위한 것이며, 그 무슨 재판관의 너그러움을 자랑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우리 법률의 가장 분명한 특장은 우리 권력에의 절대 복종이다. 너그러움이라는 덕성은 가정 생활에는 어울리는 것이 되지만 공적 생활에는 끌어넣어서 안된다. 재판관은 55세 정년으로 한다. 그 이유는,

첫째, 자칫 노인은 선입관을 굳혀 새로운 체제에 순응하기를 싫어한다. 둘째, 인사 쇄신을 자주 할 수 있어 우리의 명령을 잘 듣는 자로 교체시킬 수 있다. 즉 지위를 보전하고 싶은 자는 유유낙낙하며 따르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재판관은 그 임무가 벌을 주는 일이며 법을 적용하는 일이라고 이해하고 있고 저들 비유태인 재판관 모양으로 국권을 있으나 마나 하게 여기어 스스로의 자유주의 사상을 반영하려는 따위의 짓은 꿈에도 생각지 않는 자에 한하게 된다.
또한 인사 이동을 몹시 하는 것은 관료들의 결속을 깨기 위한 것이다. 그로써 그들은 1계급의 대표가 아니며 국가의 대표로서의 감각을 지니고 그의 운명을 나라의 성쇄에 직결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재판관은 인민 상호의 질서를 흐트리는 직권 남용을 결코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교육된다.

현재의 비유태인 재판관은 그 직책에 관해서 올바른 인식을 갖지 못하고 있으므로 어떠한 범죄에도 정상 참작을 보탠다. 이것은 정부가 재판관을 임용했을 때 그들에게 의무와 책임의 관념을 착실하게 불어넣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동물이 먹이를 찾기 위해 그 새끼를 아무렇게나 내버려두는 것과 같이 그들은 직무의 설명도 않은 채 다만 부하에게 높은 지위를 던져 준다.

그 결과 그들의 정부는 그 지배하의 관료 놈들에게 발등을 밟히고 거꾸로지고 만다. 이것은 우리 정부의 계율로서도 잘 명심해야 할 일이다. 우리들의 정부는 행정 조직의 말단에 이르기까지 자유주의 사상을 내쫓아 버릴 것이다. 그것은 민중을 교육하고 우리들의 체제에 짜넣기 위한 제일선이기 때문이며 이들 자리에는 우리가 양성한 신뢰할 수 있는 자만을 임명한다.

노후 관료를 그만두게 하고 은급을 내어 주는 것은 국고의 부담 증가를 자초한다는 항의가 있을지 모른다.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그들을 그만두게 하기에 앞서서 민간 기업에서 직을 찾아 두면 된다. 거기에 세계의 금력은 모두 우리들이 지배하고 있는 까닭에 중요 시책을 위해서라면 너무 구두쇠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들은 절대적인 독재 전제를 행하겠지만 그 권력 발동에는 언제나 엄격한 일관성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들의 단호한 의지는 어떠한 때나 장소를 불문하고 존중되고 말썽 없이 실행될 것이다. 어떠한 불평 불만도 무시하겠지만 행동에 의한 반항에는 엄격한 제재로써 임해야 한다. 우리의 재판에 오판이나 부정이 있다는 염려를 없애기 위해 공소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만일 그러한 판결이 있을 경우 우리들 자신이 그것을 취소하고 담당 재판관은 직무 위반의 이유로 엄벌을 한다. 그렇게 하면 그러한 과실은 두 번 다시 거듭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금 말해 둔다.

인민이 우리의 정치에 만족하게 되도록 우리들은 관료의 행동을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빼놓지 않고 감독한다. 인민에게는 선한 정치와 아울러 좋은 관료를 요구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세계 지배자, 우리의 정부는 인민의 화복에 대해 가장과 같은 관심을 가졌다고 보여질 것이다. 우리의 인민은 지배자를 부친과 같이 보고 그야말로 모든 일에 마음을 쓰고 어떠한 궂은 일도 돌보아주며 어려운 일을 해결해 주고 인민 서로간의 다툼이나 정부와의 세로의 관계, 무엇에서 무엇까지 자애 깊게 지켜주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인민들은 안태와 행복의 생활을 바라는 한 이 지배자의 어버이와 같은 자애 없이는 해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우리 왕의 절대 권력 앞에 무릎을 꿇고 거의 신격화된 존경의 눈길로 유태인을 우러러 볼 것이다. 특히 우리의 관료들이 권력 남용도 못하고 오로지 지배자의 명령을 받들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더욱 더 외경의 염을 깊게 할 것에 틀림없다.

마치 현명한 양친이 자녀들을 의무와 복종의 규율로써 버릇을 들이는 것과 같이 그들을 다스려 주는 것을 즐거워 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정치의 비밀에서 본다면 인민도 관료도 세 살짜리 젖먹이 유아와 마찬가지다. 제군이 알다시피 우리의 전제는 권리와 의무 위에 쌓여진다. 의무의 완전한 이행을 요구하는 권리는 인민의 어버이인 정부에 부과된 제일의 책무이다. 정부에는 강력한 권리가 부여되지만 그것은 자연의 법칙, 즉 복종에 입각한 사회 체제에로 인민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은 모두 그 무엇인가에 종속되어 있다. 그것이 만일 다른 힘이 아니라면 환경, 혹은 스스로의 충동, 어쨌든 자기 이상의 강한 것에 따르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인류의 행복을 위해서도 더욱더 강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확립된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희생으로 삼아야 한다. 악에 대해 응징의 벌을 내리는 일은 본보기로서 교육상의 큰 임무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유럽이 받들어 든 왕관을 그 신성한 머리 위에 얹게 될 때 그는 전세계의 수장이 된다. 그때까지는 수많은 희생을 필요로 하지만 그것도 비유태인 정부가 서로 수세기에 걸쳐 과태망상적인 싸움으로 흘린 피의 희생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의 왕은 인민과 더불어 끊임없이 접촉하고 그 앞에서 연설하겠지만 그것은 전광과 같은 속도로 전세계에 넓혀질 것이다.

시온의정서 16-20

제16의 의정

대학은 우리들 이외의 힘을 결집시키는 제1의 장소이므로 이것을 폐지한다. 그 다음 새로운 강령에 바탕을 둔 신대학을 창설할 것이다. 학장이나 교수는 정밀한 비밀 계획에 의해서 양성하고, 이 계획의 테두리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해 둔다. 그들의 임명에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우리 정부에 완전히 종속시킬 것이다.

정치나 국법의 문제는 모두 교육 과정에서 제외된다. 이들 과목은 우수한 인물 가운데서 뽑아낸 극히 소수에게만 가르친다. 대학은 비극이나 희극의 문학이라도 쓰는 셈으로 헌법 초안을 만지작거리거나 그들의 부친조차도 알지 못했던 정치 문제에 참견을 하는 것과 같은 풋내기를 그 문에서 내어놓지 않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리석은 민중이 천박하게도 정치 문제를 연구하게 되니까 공상가나 불평 분자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교육이 그 자녀를 어떻게 길렀는지 제군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기는 과거에 있어서는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우리들 자신이 그들의 교육에다 혁명의 씨앗을 심어 놓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권력을 쥐게 된 마당에 있어서는 파괴 활동의 요인을 만들게 될 만한 교과 과목은 모조리 없애 버린다.

우리들은 청소년을 당국에 대해서 유순하게 기르고 지배자를 경애하며 평화와 안녕의 기둥으로 신뢰 하도록 만든다. 우리들은 고전과 역사의 연구를 폐하고 미래 사회의 연구에 눈을 뜨게 한다. 우리들은 인류의 기억 속에서 우리에게 알맞지 않은 역사 사실을 말살하고 비유태인 정부의 결점을 분명히 밝힐 수 있게 그런 것만을 역사로서 남겨 둔다.

현실적인 생활, 사회적 체제, 인간의 상호 관계, 제악의 근본인 이기주의를 던져 벗어버릴 의무와 그 밖의 교훈이 우리들의 교육의 제1의가 되는 것이다. 다만 교육은 어떠한 경우에도 일률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므로 이 계획도 직업별로 달라질 것이다.
교육 제도의 이러한 통제는 매우 중요하다.

사회의 각 계급은 그 고유의 목적과 직업에 따라 정연하게 통제된 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특별한 천분이 있는 자는 높은 계급이나 별다른 직업으로 나아갈 수가 있고 장래도 그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소수의 예외가 있다고 해서 소질이 없는 인간을 다른 계급으로 바꾸어 넣고 혈통이나 천직에 의해서 얻은 위치를 뺏어 버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불합리가 비유태인 사회에 무엇을 가져다 주었던가. 제군은 잘 알 것이다. 인민을 우리의 왕에게 심복 시키기 위해 학교에서도, 공회당에서도 그의 위덕과 인애를 가르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우리들은 모든 사학을 폐지한다. 학생은 학교에 있어서나 클럽에 있어서나 부형과 함께 회합하는 것이 허용된다. 휴일에는 교수들이 공개 강좌라는 형식으로 세계에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신학설의 원리 같은 것을 강의 하게도 될 것이다. 우리들은 이 원리를 신앙 교리에까지 높여 그들을 우리 유태교에의 개종에까지 이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우리의 행동 강령을 발표한 후 이 원리의 근거를 제군에게 설명하겠다. 수세기의 경험에 비추어 인간은 사상에 의해서 행동하고 사상은 교육에 의해서 주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계급이나 연령에 차가 있더라도 그에 알맞은 방법만 있다면 교육이 똑같은 효과를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 교육으로써 그들의 창조력은 근절된다. 이제까지 오랜 세월 그들의 창조력을 우리의 목적에 필요한 방면으로만 끌고 왔지만 그 창조력의 최후의 잔광마저 꺼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사색력을 예속화시키는 것은 이미 ‘시청각 교육’이라고 일컫는 방법에 의해서 시작되고 있다. 이 시청각 교육의 주된 목표는 비유태인 모두를 뇌를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사물을 생각할 수 없고, 그림을 보지 않고서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유순한 동물로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에 있어서는 이미 우리들의 좋은 동지 레온.부르즈와가 시청각 교육에 바탕을 둔 완전히 교과 과정을 만들고 있다.

제17의 의정

변호사라는 일은 인간을 냉혹, 잔인, 완고, 무주의하게 만들고 언제나 인정미가 없는 법률 지상주의의 사나이가 되게 한다. 그들은 사건의 사회적 의의 같은 것은 생각해 보기조차 하지 않으며 변호를 위한 변호를 한다. 따라서 어떠한 의뢰일지라도 거부하지 않으며 법의 맹점을 찔러 어떻게 해서든지 무죄로만 만들려고 버둥대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법정의 위신을 손상케 한다. 그래서 우리들은 변호사의 활동에 엄격한 틀을 끼워 그들을 국가의 공무원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변호사는 재판관과 마찬가지로 피고와 교섭을 할 수 없게 된다.
즉, 재판소에서 사건 기록을 받아 조서를 검토하고 법정에 있어서의 심문으로 분명해진 결과에 따라 변호를 하게 되는 것이다.
변호사는 변호의 성과와는 관계없이 똑같이 봉급을 받도록 한다.
재판은 단축되고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공정한 변호가 행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법조계의 부패도 없어지고 돈을 많이 내지 못하면 재판에 이길 수 없다는 현재의 폐해도 없어져 버릴 것이 틀림 없다. 기독교 신부나 목사의 권위는 우리들에 의해서 땅에 떨어지고 민중에 대한 그들의 세력은 날마다 저하되고 있다. 신교의 자유는 어디서나 인정되고 있으며, 기독교의 완전한 붕괴도 불원간 시간의 문제가 될 것이다. 다른 제종교는 보다 간단하게 없애 버릴 수 있겠지만 아직 그것을 논하기에는 시기상조이다.

당국이 기독교 성직자를 더욱 압박하여 그 감화력을 옛날과는 비할 바도 되지 않도록 몰아대게 하는 것이다. 로마 교황의 권력을 궤멸시키는 시기가 이르게 되면 숨은 손이 바티칸을 가리키고 민중이 밀어닥치게 될 것이다. 민중이 바티칸에 쇄도했을 때 우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교황의 보호자로서 등장하여 유혈의 참극을 허락하지 않도록 한다.

이러한 책략으로 우리들은 바티칸의 속 깊이 침입하고 교황의 권력을 내부로부터 잠식하여 완전히 공동화하기까지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이윽고 세계의 참된 수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이 아직 청년들을 유태교에 이끌기 전의 과도기 단계에 있어서는 현존 제종교를 공공연하게 직접 배격하는 것은 피하면서 내부 분쟁을 조장시키거나 교리 비판을 하거나 하여 파멸에의 길을 걷게 한다.

현재 우리들의 신문의 임무는 국정 문제, 종교 문제의 모든 국면에서 비유태인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악질적인 테마 증상도 서슴지 않고 사용하게 되지만 이것은 천재적인 우리 민족만이 할 수 있다. 우리들의 권력은 마치 인도의 비슈투신과 같은 것이다. 백 개의 손은 각기 사회의 각 기관을 쥐고 있다. 경찰의 도움 같은 것을 빌지 않고서도 모든 정보를 캐치할 수 있다. 경찰은 지금에 있어서는 비유태인 정부가 사회를 탐지하려고 하고 있는 눈을 도리어 흐리게 하는 역할을 연출하고 있다.

우리들의 시대에는 우리 인민의 3분의 1이 의무의 염에서 자발적으로 국가에 봉사하고자 하여 나머지 인민을 감시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를 위해 스파이하고 밀고하는 것은 아무런 부끄러움도 되지 않으며 크게 상을 받는 미덕이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것도 남용을 막기 위해 허위의 밀고는 엄벌에 처해야만 한다. 우리의 동지는 사회의 최하층에서 최상류의 계급에 이르기 까지 걸쳐 있다. 놀기 좋아하는 관리를 비롯해서 출판, 인쇄 업자, 서점, 상인 노동자에서 운전사, 나이트 클럽의 보이에 이르기까지 포함된다.

그들은 비공식의 존재로서 스스로 행동하는 이른바 집행권은 없기 때문에 주로 스파이나 밀고를 할 뿐이다. 드디어 체포라는 경우에는 헌병이나 도시 경찰의 손을 빌린다. 정치의 영역에서 중시한 전문을 보고하지 않은 것을 알게 되면 은닉이나 공범의 죄를 묻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동포는 현재도 유태인의 신앙이나 도덕의 계율에 배반한 자를 모두 장로 회의에 신고할 의무를 지니고 있지만 미래의 우리들의 세계 왕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전인류에겐 범인 고발의 명예 있는 의무를 지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들이 의식적으로 비유태인 사회에 넓혀 둔 직권 남용, 증수회와 같은 계약을 절멸한다.‘그러한 폐해를 스스로 보급하여 두었으면서도’라고 말할는지 모르지만 그 이외에 그들의 정치, 사회를 혼란 시키는 어떠한 유효한 수단이 있었겠는가. 혼란 조장의 가장 중요한 요점은 질서 유지를 다해야 할 고급 관료들을 그들의 악력 즉 편협성과 권력의 남용 특히 수회를 성행 시켰던 것이다.

제18의 의정

경찰의 경비력을 강화하는 일은 정부 권력의 위신을 도리어 약화하는 작용을 한다. 이러한 사태가 되었을 때 우리는 인공적인 폭동을 일으키고 아지테이터하게 인민의 불만을 선동시킨다. 수많은 군중이 떠들어대고 폭동의 성행이 이루어진다. 여기서 이것을 구실로 삼아 가택 수색을 하거나 감시를 심하게 하거나 하면 될 것이다. 수색이나 감시는 비유태인의 경찰로 하여금 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선동가라는 것은 지껄이기 위한 지껄임, 호언장담을 좋아하니까 행동으로 옮기게 되기까지는 비밀 경찰을 잠입시키는 것으로 내 버려둔다. 제군이 기억해 두기 바라는 것은 지나치게 정부가 음모를 적발하게 되면 도리어 그 위신의 손상을 보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정부의 무능 보다 더 악화 되면 마치 실정이 있었음을 스스로 고백하는 결과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들은 이제까지 비유태인 지배자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위해 몇 번인가 흉행을 꾀하여 왔다. 자유라는 말을 사용하기만 하면 눈먼 양과 같은 우리의 앞잡이들은 곧 유도당하여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래서 비유태인 정부는 당황한 나머지 어마어마하게 경비력의 강화에 주력하고 스스로의 위신을 손상시켜 버렸던 것이다.

우리 유태의 왕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호위만으로 지켜진다. 우리의 왕이 음모를 두려워하여 몸을 숨긴다는 생각조차도 인민들로 하여금 품게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한다면 비유태인 지배자와 조금도 다름이 없고 왕 또는 그의 후예에 대한 가까운 장래의 사형 선고가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의 왕은 위엄에 넘치고 그 권력을 사용하는 경우는 다만 인민의 복지를 위한 일뿐이며 결코 왕 자신이나 그 왕조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하여 왕의 권위는 더욱 더욱 높아지고 인민에게 존경 받고 지켜질 것이다. 그리고 인민은 왕을 신격화하게 되겠지만 그것도 왕의 권위가 인민의 질서와 안녕을 보증한다고 모두가 확신하기 때문인 것이다. 왕을 외면적인 경비력으로 방위하는 것은 그 권위의 약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의 왕이 인민들 가운데를 순찰할 때, 우리들은 우연히 거기에 있었던 구경을 좋아하는 군중으로 가장하여 슬며시 왕의 주변을 둘러싸고 이른바 군중은 너무 접근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모범을 보이게 되면 인민도 이윽고 조용히 삼가하는 태도를 취하게끔 될 것이다. 하기는 누군가가 사람들의 틈을 빠져 나와 왕에게 청원서 같은 것을 내려고 한다면 앞줄에 선 자가 그것을 받아 들고 사람들이 보고 있는 면전에서 왕에게 바쳐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민은 청원서가 왕에게 전달되고 왕 스스로가 국무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권력의 위신은 인민이 ‘왕은 아시고 계시다’라든가 ‘왕이 알아주실 것이 틀림 없다’라든가 하는 말을 하게 됨으로써 보다 더 강력하게 보전되는 것이다.

너무나 눈에 띄는 경비를 둘러치는 일은 도리어 지배자의 신비적인 위광을 흐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엄하게 한들 그것은 반드시 한계가 있는 경비의 둘레를 부셔 버리려고 하는 대담한 자를 자극시키고 오히려 자신마저 갖게 하여 테러의 찬스를 엿보게끔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비유태인에게는 이것과 정반대의 것을 가르쳐 주었다. 너무 지나치게 과대한 과잉 경비라는 것이 그 어떠한 나쁜 결과를 자아내게 되는가. 제군들도 잘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 하에서는 조금이라도 의심쩍은 자는 재빨리 체포를 한다. 혹시 잘 못잡을 염려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정치범의 용의자를 놓치게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아주 엄격하게 대처를 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사법에 있어서 범죄 동기의 해명에 도움이 될 듯한 자가 있더라도 직권을 가진 검찰관 이외에는 사건에 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정부라 할지라도 절대적으로 과오가 없는 정책만을 하게 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제19의 의정

우리들은 인민이 국정에 개입하는 것은 금지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경제 상태를 향상시키기 위한 청원이나 제안은 환영한다. 이래서 우리들은 문제의 소재를 알 수 있게 되며 개혁해야 할 것은 개혁하는 일이 우리들의 가장 원하는 바이기 때문이다. 또 단순한 공상, 무지에 기인되는 경우에는 사실에 의해서 반론하고 제안자의 잘못을 지적하여 각하하면 된다.

경찰력에 의지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즉 인민들 속에 뿌리를 넓힌 권력은 반란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것은 강아지가 코끼리에게 짖어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강아지는 코끼리의 위대함을 모르는 까닭에 짖어대지마는 한번 코끼리의 힘을 보여만 주게 되면 두 번 다시 짖어대지 않고 코끼리만 보면 꼬리를 흔들게끔 되는 것이다. 정치범이 영웅시 되는 일을 없애기 위해서 우리들은 그를 절도, 살인 등 파렴치 죄의 자들과 한자리에 앉힌다. 그렇게 하면 세상 사람들은 그를 특별 취급을 하지 않고 경멸의 눈으로 보게끔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은 비유태인이 우리의 앞잡이에게 같은 수법을 사용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갖은 고심을 다하였다. 신문이나 공개의 연설, 혹은 교묘하게 편집한 역사 교과서에서 그들 혁명가를 인류의 복지를 위한 순교자로서 찬미케 하였다. 이렇게 해서 자유사상의 신봉자를 대량으로 만들어 내고 무엇이든 우리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거세된 양 수천 명을 한 우리로 끌어들였던 것이다.

제20의 의정

이것은 가장 난해한 것이며 우리의 계획의 최종적인 결론이 되는 것이므로 이 의정서의 마지막으로 돌린 것이다. 그것은 화폐 경제와 세제에 관한 제 원칙이다. 이것은 또한 최종 결론인 동시에 이것이야말로 이제까지 설명해 온 문제의 성패가 모두 집약적으로 달려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미 앞서서 암시해 둔 것이기는 하지마는 ‘우리의 계획은 모두가 모든 계수에 의해서 해결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권력을 뺏은 다음 우리의 전제 정부는 인민에 대해서 과중한 세금을 매기지 않도록 할 것이다. 정부는 인민의 부친이며 보호자인 것이다.

그러나 한편, 국가 행정에는 막대한 예산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그것을 위한 재원은 당연히 징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문제는 그 모으는 방법에 있다. 즉 세금을 각인의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할당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 원칙은 모든 것은 왕에게 귀속된다는 데서 출발한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어떠한 사유 재산에도 손을 댈 수 있다. 통화의 유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현행 통화를 모두 몰수하는 것도 가능하다.

과세의 최선의 방법은 재산에 대한 누진세이다. 그렇게 하면 재산고에 따라 아무런 조작도 없이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 부자는 국가가 그의 재산의 안전을 지키고, 정당하게 부를 늘리는 것을 보증해 주고 있는 것이므로 당연히 재산의 일부를 국가에 바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야만 된다. 여기서 ‘정당하게’라고 일부러 지적한 것은 소득의 수단이 합법을 가장한 수탈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회 개혁은 시대의 필연인 추세이며 사회의 평화와 질서를 보전하는데 있어서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상층 부류의 계급으로부터 손을 대야 하는 것이다. 빈곤한 계층에 대한 과세는 혁명의 움이 되고 국가에 아무런 이익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
국가는 하잘 것 없는 적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민심이라는 크나큰 수확물을 놓쳐 버리게 된다.

누진적인 재산세는 개인의 부의 지나친 증대를 막을 것이다. 우리들의 현재 부를 자본가에 집중시키고 있는 것은 비유태인 정부의 힘이 너무 강하게 되지 못하게끔 국고의 재력에 대항시키기 위한 것이다. 누진세는 현행의 할당세에 비해서 굉장히 많은 수입을 가져 올 것이며 이에 반하여 할당세는 인민들 사이에 불평과 소요를 일으키게 하는데 도움이 되고 지금의 우리에게는 이것이 필요하다.

우리들의 왕의 권력의 기저는 힘의 밸런스와 평화의 유지로써 성립되어 있다. 이 때문에 자산가가 소득의 일부를 나라에 바치고 국가 기관의 운영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다. 남은 돈이 있는 자, 낼 돈이 있는 자에 의해서 공공의 경비가 충용 되는 셈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자는 국가 재정의 지주이며 평화와 번영을 촉진시키는 것으로써 빈민의 질투, 반감을 해소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즉 국비의 거의 대부분이 유산자의 부담이며 그것이 공공 복지를 위해 지출된다는 것을 무산자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지식 계급의 납세자가 새 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늘어놓지 않게끔 하기 위해 국비의 지출에 대해서는 세목의 숫자까지도 공표하도록 한다. 물론 왕실비나 정부 관청비는 발표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왕의 소유’라는 원칙이므로 왕은 개인적 재산을 일체 가지지 않는다. 만일 왕이 개인적 재산을 갖게 되면 국가의 모든 것을 소유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고 모순을 낳게 된다. 왕실 가운데서 국비에 의해서 생활할 수 있는 것은 왕통 계승권자 뿐이며 그 밖의 사람들은 공무에 종사하든가 다른 직업을 가져야만 된다.

왕의 혈통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국고로부터 돈을 얻을 특권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매매, 소득, 유산 상속 등에도 누진적 세금을 부과한다. 동산, 기타의 양도에 있어서 신고를 태만히 했을 때에는 탈세가 발각된 날로부터 양도의 일시까지 소급하여 일정률의 벌금을 특별히 지불케 한다. 모든 양도에는 신구 소유자의 주소, 성명을 기입한 증서를 만들고, 매주 그 지역의 세무서에 제출케 한다. 또한 거래 액이 어느 일정액을 넘을 경우에는 거래 당사자의 성명 신고의 의무를 지운다. 일상 필수품의 구매는 극히 저율의 인지세만으로 그치도록 한다.

이러한 방법에 의한 세수가 비유태인 정부의 현재의 세수에 비하여 얼마나 많을 것인가. 제군, 생각을 해 보라. 국고는 일정액의 예비금을 보유하며 그 이상의 것은 유통시킨다. 잉여 자금으로 국가는 공공 사업을 일으키는데 이 사업을 행하는 일로써 노동 계급이 윤택하게 되고 국가의 이익이 도모되며 왕에의 신뢰는 높여진다. 또한 나라의 자금은 산업상의 발명이라든가 생산 진흥의 장려에도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국고에는 정밀한 계산에 의해 연차 계획의 자금 이외에 여분의 돈은 한 푼도 남겨서는 안 된다.

원래 화폐는 윤활유와 같은 것이며, 기름이 끊어지면 기관은 움직이지 않게 될 것이다. 화폐의 일부를 유가 증권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금융 정체가 일어났다. 이 정체의 결과는 이미 주지되고 있는 바와 같다. 우리들은 회계 검사원을 설치한다. 그리고 왕은 언제든지 전월까지의 국고의 수지를 점검할 수 있게 한다. 모든 것을 소유하시는 왕만이 국가의 재산을 약탈하는 일에 흥미를 갖지 않는(자기의 재산을 자신이 뺏을 필요가 없다.)유일의 인물이다. 즉, ‘사’가 없는 왕이 감사를 하시게 되면 국비의 손실이나 낭비는 면할 수 있다.

또한 왕에게는 예의적인 알현이라든가 나라의 대표라고 하는 무수한 습관이 있는 법이지만 그러한 것은 귀중한 시간의 낭비가 되므로 전폐된다. 그리고 본래의 사명인 국정의 통할, 신방침의 발의와 같은 것을 충분히 사색하는 여유를 만들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그만큼 한편에서는 왕의 주변을 이른바 ‘측근’이 둘러싸고 그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여 궁정을 화려하게 하려고 하기 쉽다.

그 결과 국가의 안녕은 돌보지 않고 소홀하게 되기 쉬우므로 그런 측근의 간신이 생기지 않도록 엄격히 경계를 해야만 한다. 비유태인을 파탄 시키기 위해 우리들은 경제계에 정체 현상, 공황을 일으켰다. 우리들은 가능한 한도의 유통화폐의 회수를 강행하여 거액의 돈을 퇴장 시켰다. 결국 비유태인 정부는 자금이 고갈되고 할 수없이 우리들에게 국채의 인수를 부탁하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다액의 이자 지불의 의무를 짊어지게 되고 국가 재정에의 중압을 자초하여 이윽고 정부 그 자체가 우리의 자본에 종속케 되었다. 중소 기업이 대자본에 종속되고 인민의 힘도 뺐었으므로 인민도 국가도 모두 우리가 흡수하게 되었다.

현재의 화폐 발행고는 인민 명목의 소비에 수응되지 못하고 있으므로 노동 계급 전부의 요구를 채워 줄 수가 없다. 신화폐의 발행은 인구 증가에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어린 아이라고 하더라도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화폐 유통의 요인이 되는 것이니까 당연히 계산에 넣어야 된다. 어쨌든 화폐 제도의 개혁은 전세계의 가장 중대한 문제이다.

제군도 알다시피 금본위제는 이것을 채용한 국가로서는 그야말로 사약을 안은 셈이다. 그것은 우리들이 될 수 있는 대로 금을 금융계로부터 회수하고 말았기 때문인데, 정부는 점점 화폐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우리의 국가에 있어서는 노동의 가치에 바탕을 둔 신용 본위제를 채용한다. 통화는 나무이건 종이이건 무엇이라도 좋다.

우리들은 전인민의 수요를 산정하고 한 사람이 태어나면 증발하고 한 사람이 사망하면 회수한다. 인구의 증감은 각 지방 관청으로 하여금 조사하게 하면 될 것이다. 공공 지출이 멎지 않도록 일정한 지불일을 정한다. 재무부와 다른 관청과의 정실 관계 같은 것도 일소해 버리고, 특별한 관청만이 우대되고 다른 관청이 심술을 받게 되는 따위 폐풍도 없애 버려야 한다.

세출 세입 예산은 병렬되어 제출되므로 비교 대조되며 국가 재정이 위태롭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재정 개혁안은 발본적인 것이지만 너무 당돌하게 발표함으로써 필요 이상의 충격을 주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제까지의 재정의 혼란 된 상태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잘 설명하고 그 결점을 가르쳐 주도록 한다.

먼저 예산인데, 매년 팽창해 가는 데도 예측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통상 예산의 편성으로 시작된다. 언제나 그 연도의 예산은 상반기의 마지막쯤에는 모두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추가 예산을 짜게 되지만 이것도 3개월쯤 지나면 다 써 버린다. 차례 차례로 추가하여 결국 꼼짝달싹도 못하게 된다. 다음 해의 예산은 전년의 총지출을 바탕으로 하여 작성되므로 추가의 분만으로도 50%난 달하게 되어 2년마다 당초의 3배나 불어나게 마련이다.

비유태인 정부가 방만하게 계속해 온 이 습관으로 인해서 국고는 언제나 비어 있다. 다음으로 공채 발행에 의한 둘러 맞추기가 시작되어 완전히 파산 상태에 전락된다. 이러한 재정 방법은 사실은 우리가 가르쳐 준 것이지만 결코 우리들 자신은 본받아서 안 될 것임을 제군은 알고 있을 것이다. 모든 국채는 정부가 잘못된 행정을 행하고 권력을 올바르게 행사하지 않았다는 명백한 증명이다. 즉, 스스로의 약체, 무능의 고백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모클레스의 칼과 같이 국채는 언제나 지배자의 머리 위에 겨누어 늘어져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인민에게 임시세를 부과하면 될 것을 우리들 유태인 자본가에게 탄원을 해 오는 것이다. 그리고 외채를 모집하게 되는데 이 외채라고 하는 것은 국가에 달라붙은 거머리와 같은 것이므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 거머리를 떨어뜨리는 힘은 이미 비유태인 정부에는 남아 있지 않으며 드디어는 수많은 거머리에게 피를 빨려서 빈혈사하고야 말 것이다.

국채, 특히 외채는 흡혈 동물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알기 쉽게 풀이하면 국채는 이식을 지출할 약속으로 발행한 국가의 차용 증서로서 그 이율은 조달하고자 하는 원금의 액에 따라 변동한다. 가령 5부 이자로 한다면 20년으로 원금과 동액의 이자를 지불하게 되고, 40년이면 원금의 2배, 60년이면 3배, 그런데도 원금은 그대로 남아 있는 계정이 된다. 이러한 계산을 하면 국가는 가난한 납세자로부터 마지막 한 푼까지 빼앗고도 그것을 외국의 자본가에게 갖다 바치는 꼴이 된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이식이 없는 돈, 즉 처음부터 인민에 과한 세수에 의해서 얻는 돈이 가장 득책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채가 내채라면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그 까닭은 가난뱅이의 푼돈을 모은 돈의 이식이 부자의 호주머니에 흘러 들어 간다는 것뿐이니까. 그런데 이것도 우리들이 정부 고관을 매수하여 시킨 것이지만 외채 모집을 하도록 꾀인 것이다. 그 결과 각국의 부는 강물이 흐르듯 우리의 품속으로 흘러 들었다. 그리고 비유태인은 우리들 앞에 무릎을 꿇고 공물을 받들어 바치는 지경이 되고 있다.

국가의 화폐 경제 조세 대책의 모든 면에 있어서의 비유태인 정부의 경솔함과 예견력의 허약함, 그리고 이에 더하여 고급 관료의 수회와 무능함은 비유태인 국가 그 자체를 우리의 노예적 채무자로 만들고 말았다. 이제 그들은 도저히 자유의 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는 하지마는 여기까지 끌고 오는 데 있어서 우리들이 지불한 노력과 비용은 대단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일각이라 할지라도 금융의 정체는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률 이식의 장기 국채는 모두 폐지하고 1분 이자의 단기 증권만을 허가한다. 이 정도의 저리라면 국력을 거머리 즉 대자본가에게 빨리게 할 까닭은 없다. 하기는 장기채의 발행은 대공업 회사에는 허가해도 무방하다. 그들이라면 이익금으로써 쉽게 이자를 지불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는 이윤 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빌린 돈을 필요성에 따라 소비하게 되므로 그렇게는 안된다. 그러나 정부 자신이 산업채를 사는 것은 전혀 무방하다. 현재와 같이 국채를 발행하여 이자 지불에 고생을 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산업채에 투자하여 이익 배당을 받으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 정체는 없으며 기생적 생활이나 나태함도 없어질 것이다. 비유태인의 머저리짓은 정말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이다. 원금과 동액이나 된 고리를 갚으면서도 우리에게 머리를 숙인다. 필요 금액을 무이자로 어째서 인민으로부터 받아내지 않았는가. 그 편이 훨씬 간단했을 텐데. 이것은 실은 유태 민족의 천재적 지능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국채의 이야기를 귀뜸했을 때 그 얼마나 그것이 득이 되는가 감쪽 같이 속였던 것이다.

때가 이르러 우리가 나라의 재정을 맡게 되면 몇 세기 동안이나 비유태인 정부를 사용하여 실험해 온 경험에 의해서 훌륭하게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예산은 분명하며 결정적이어서 새로운 체제가 더욱 훌륭한 것임을 똑똑히 알게 할 것이다. 국비를 낭비하는 것은 이제까지 그들의 정부를 약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재정 제도를 확립하고 비록 왕이라 하더라도 하급 관료와 마찬가지로 계획 이외의 예산 지출 같은 것은 할 수 없는 제도로 만든다. 확고한 재정이 없이는 통치할 수 없다. 그것은 그 어떤 영웅, 기사라 할지라도 한 푼 없이 원정한다면 실패를 보게 될 뿐인 것과 같다.

우리들은 비유태인의 왕에게 호화스러운 축연을 베풀고 의례적인 알현이나 하며 환락에 지새우도록 하여 정무를 돌볼 틈이 없게 유혹을 했다. 이것은 우리의 지하 정부의 존재를 숨기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또한 왕에 대신하여 국정을 보고 있던 현관들도 아무 것도 몰랐으며 우리의 스파이들이 이것저것 보고서를 썼다.
이 보고서에는 장래는 ‘흑자 재정’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관측을 얽어 매어 그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흑자를 낼 수 있는가. 세제 개정인가—- 하고, 누구나 곧 의문을 가지게 될 것임에도 그들은 누구 한 사람 그러한 것을 생각하는 자는 없었다.

제군은 인민의 놀라운 근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낙천성이 어떠한 결과를 자아내었는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재정 붕괴는 이제 눈앞에 다가왔다.

시온의정서 20-24

제 21의 의정

앞의 의정에 계속하여 내채에 관해서 좀더 자세하게 말해 보기로 하자. 외채는 그들 정부의 돈을 우리들의 금고에 채우게 되었지만 이제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는 원래 외국이고 뭐고 없는 것이다. 고급 관료의 부패나 정부 수뇌의 태평스러움에 틈타서 그들에게 소용도 없는 돈을 빌려주고 2배, 3배 아니 더욱 많은 돈을 울궈 올렸다. 하지만 도대체 그 누구가 우리에게 대해서 욕심쟁이라고 욕을 하겠는가. 물론 있을 까닭이 없다.

공채 발행에 있어서는 먼저 구입의 신청을 받게 되지만, 일반의 누구 나가 살 수 있도록 액면을 싸게 하여 백 원에서 천 원까지도 한다. 최초의 응모자에 대해서는 대개의 경우 할인을 한다. 매출의 다음날에는 신청이 쇄도했다는 구실을 붙여 인위적으로 가격의 인상을 행한다. 수일 후에는 발행고에 이르고 재무부의 금고는 꽉 차게 되어, 이제는 돈을 간수할 장소도 없다고 발표하게 한다.

그러면 ‘그렇다면 어째서 신청을 받았는가’하고 따질 것이다.
물론 ‘신청액이 발행 예정액을 수배나 상회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로써 인민이 정부의 채권을 얼마나 신용하고 있는가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연극을 상연하는 것은 좋지만 그 다음에 채무란 잔뜩 남게 된다. 우선 이자 지불의 도망 길은 으레 새로운 공채의 발행이 된다. 채무와 이자 부담이 더욱 증가된다. 그리고 공채 발행 능력이 한도를 넘게 되면 이번에는 새로운 세금을 울구어 내야 한다. 그래도 겨우 이자 지불을 할 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않고 공채의 원금 상환까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말하자면 추가세도 차입금을 위한 차입금에 불과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공채 환서 즉, 이율의 인하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이자 부담을 가볍게 한다는 것뿐이며 채무 그 자체는 없어지지 않는다. 거기다 이 조치는 공채 소유자의 동의를 필요로 한다. 만약 동의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액면 가격은 갚아 주어야 한다. 만일 전원이 반불을 요구하기라도 한다면 정부는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 버리게 마련이다. 실제 전액 반불 같은 것이 가능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비유태인은 다행스럽게도 재정 문제에는 그렇게 밝지 못하니까 신규 사업에의 투자와 같은 모험은 하지 않고 환서에 동의하고 이자 체감을 승낙한다. 이렇게 해서 뻔히 알면서 정부로 하여금 수백만의 이자 지불분 을 득보게 해 준다.
하지만 외채의 경우는 그렇게 엿장수 마음대로 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게 하는 날이면 단번에 우리들이 전액 반불을 요구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파산이 일어나고 인민과 정부 사이에 씻을 수 없는 불신이 생기게 된다.

이상의 사실과 함께 다음과 같은 것에도 주의하기 바란다. 현재 내채는 지불 기한이 비교적 짧은 단기 공채라는 것으로 정리 되어 있다. 이것은 국립 은행이나 저축 은행에 예탁되어 정부가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외채의 이자 지불로 없어져 버릴 것이다. 그 후는 동액의 정부 공채로써 구멍이 메워진다. 이와 같은 모양으로 그들의 국고는 채무의 산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지배가 완성되면 이러한 재정의 속임수는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으므로 흔적조차 없애 버려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권력의 위신이 채권 가격의 변동에 의해서 흔들리게 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채권에는 가격이 오르내리지 않도록 법정 강제의 환율을 매겨 고정화 시켜 버린다. 무릇 가격 상승이라는 것에는 하락이라는 요인이 처음부터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활동의 초기에는 비유태인의 증권에 대해서 그러한 조작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들은 증권거래소 대신에 국립의 신용금고를 만들 것이며, 여기서는 국가의 지시대로 산업 채권을 평가하고 그것을 담보로 하여 자금 융자를 한다. 이를테면 하루 5억 원이나 산업 채권을 시장에 매출하고 또 매입한다. 이렇게 해서 생산적 기업을 좌우하게 되지만 국가가 그 얼마나 큰 힘을 경제계에서 점하게 될 것인지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제 22의 의정

이제까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이 세계에서 생긴 비밀의 진상을 백일 하에 드러냈다. 시기는 다가왔고 가까운 장래에 그 결과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우리들과 비유태인과의 관계를 다루는 비밀 계획과 우리의 재정 정책도 설명했고, 이제 거의 더 말할 것은 없다.

우리들은 현대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힘—‘돈’을 가지고 있다. 불과 이틀 만이면 우리들은 필요한 만큼의 돈을 갖다 보일 것이다. 우리의 세계 정복이 신의 뜻에 따른 것임을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의 위대한 부, 이것으로 이제까지 몇 세기에 걸쳐 거듭해 온 악을 깨끗하고 말끔하게 씻어내리고 이것을 인류의 참된 행복과 질서를 위해 도움이 되게 한다. 다소 폭력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질서는 확립한다. 우리의 율법에 따르기만 한다면 이 고통 많은 지상에 참된 행복과 자유를 가져 오게 하고 평화와 질서를 주게 된 것이다.

하지만 자유란 물론 방종은 아니며 종교의 자유, 평등의 권리 같은 구호로써 평화가 도래하지는 않으며, 인간의 존엄이 보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널리 알리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개인의 자유라고 하는 것이 군중들 앞에서 선동 연설이나 하고 자신도 타인도 소란 속에 끌어넣는 권리가 아니라는 것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참된 자유란 사회 생활에 있어서의 규율을 올바르게 틀림없이 지킨다는 전제에 선 ‘인간의 불가침성’인 것이다.

인간의 존엄이라는 것도 자기의 권리와 아울러 자율의 정신이 병존하여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결코 제멋대로의 자아를 자기 마음대로 뻗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권력은 강대하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광휘에 넘쳐 있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통치와 지도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공상을 휘두르는 종래의 정치가의 그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질서를 갖추고 인간에게 행복을 주는 것이다.

인민은 우리 권력의 위광을 엎드려 바라보게 될 것이다. 참된 지배자는 모든 권리를 가지지만 신권마저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따라서 누구 한 사람도 이 권력을 넘겨다 보고 그 한 조각마저 뺏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제23의 의정

인민에게 복종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해 우리들은 검약 질서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는 사치품의 생산을 될 수 있는 대로 제한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풍속이 순박하게 되고 사치 경쟁과 같은 악습이 고쳐질 것이다. 우리들은 손으로 만드는 가내 공업을 오히려 장려하고 대공업에 타격을 준다. 대공업가라는 것은 의식하고 있든 않든 그것은 별문제로 하더라도 쉽사리 민중을 반정부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가내 공업에는 동맹 파업이라는 것이 없으므로 체제에 순응하며 반정부적이 아니다. 현재 활개를 치고 있는 대공업제는 동맹 파업을 불러 일으키고 이에서 생기는 사회 불안으로 정부는 언제나 위협을 받는다.
물론 이러한 것은 우리들의 공작에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시대에는 동맹 파업은 있어서 아니 된다.

술주정이라는 것도 법률로써 금하고 엄격하게 처벌한다. 알콜은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술에 취하면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어 버린다. 거듭 말하지만 인민은 그들과는 격절된 강력한 권력에 대해서만 복종하는 법이다. 이 강력한 힘이야말로 사회적 혼란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들은 왕에게 천사와 같은 부드러움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이 갈구하고 있는 것은 불굴의 권력의 화신이다.

현재의 비유태인 정부를 둘러싼 사회는 우리들로 인해서 퇴폐 되었고 ‘신’까지도 상실했으며 어디에서나 무정부주의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먼저 우리들은 이 맹화를 꺼야만 한다. 이에는 이 사회를 스스로가 흘리는 피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한 다음 잘 훈련된 군을 부활하여 국가 조직을 파괴하는 자들과 싸우게 해야 할 것이다.

왕은 신이 뽑아 주시는 것, 상천이 명하여 주신 바이다. 그의 사명은 인간적 이성이 아닌 동물적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맹목적인 혁명 세력을 쓸어 없애는 것이다. 현재 그러한 맹목적인 여러 힘들은 권리와 자유의 이름 아래 약탈, 폭행을 일삼고 자랑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 힘은 모든 기존의 사회 체제를 파괴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것을 실은 기다리고 바라고 있었다. 즉, 모조리 파괴되어 버린 폐허 위에 이스라엘의 왕의 왕좌를 마련하기 위해서 였다. 이스라엘 왕의 왕좌에 앉는 순간, 이제까지 폭위를 다하고 있던 모든 힘은 아침 이슬과 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왕의 앞길을 가로막는 그 무엇도 없도록 그 길목은 깨끗이 비로 쓸고, 비록 작은 돌의 한 조각이라도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 그때 우리들은 모든 인민에게 고할 것이다.

“신에게 기도하라. 신을 찬양하라. 그리고 신의 표적을 지닌 왕의 앞에 무릎을 꿇어라. 이 왕이야말로 신 스스로 나타내신 지도의 별을 머리에 얹으셨다. 이 왕이 아니면 너희들을 여러 악과 죄에서 구하지는 못하리라.”

제 24의 의정

이제 세계의 종말까지 끝없이 이을 다윗의 왕통을 어떻게 하여 굳힐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우리들은 시온의 현자들이 이제까지 모든 장해를 넘어서 전세계의 문제를 처리하고 인류의 사상을 지도하여 온 지혜를 배우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소망하는 방향으로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이다.

다윗의 후예의 몇 사람인가의 현자가 왕과 그 후계자에게 교육을 한다. 왕권의 상속은 세습이 아니며 개인의 소질, 능력에 바탕을 두도록 한다. 뽑혀진 자에게 정치의 요체를 가르치게 되는데 그때 그 누구에게도 그 비밀이 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정치는 그 비결을 알게 된 유일인의 왕에 의해서만이 행해진다는 원칙이 보전된다.

몇 세기 동안이나 축적된 경험으로부터 생겨난 정치, 경제의 원리나 자연 그 자체가 인간 상호의 관계에 대해서 정한 모든 법칙이 전수되는 것이다. 그러나 왕위 계승의 직계라고 하더라도 학습 기관에 경솔하거나 마음이 약하거나 정치에 알맞지 않거나 한다면 서슴지 않고 왕위에서 멀리 된다. 그것은 왕의 권위에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현자로부터 왕관이 받들려 진 자는 잔혹하리만큼 힘세고 활동적이고 단호한 통치를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왕이 된 자는 정신 박약이 되거나 능력을 잃게 되면 법에 따라 다른 적임자에게 그 지위를 물려 주어야 한다.

왕의 현재 및 장래 계획은 그 측근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그것을 아는 것은 왕 자신과 왕에게 정치의 요체를 가르친 세 사람의 현자에 한한다. 확고한 의지로써 스스로를 율하고 인류를 지도하는 왕인 만큼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운명의 신비를 깨치고 있는 것으로 해서 만인의 숭앙을 받는다. 왕이 명령을 발할 때, 그 누구도 그의 목표가 무엇인가를 알지 못하므로 그 누구도 그것을 방해할 수 없다. 물론 왕이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수 있는 고매한 정신을 지니고 있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어떠한 왕도 왕위에 오르기 전에 우리들의 현자에 의하여 그 정신적 자질을 테스트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인민이 왕을 알고 왕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왕은 공공의 장소에 때때로 모습을 나타내고 부드럽게 그들과 담소를 해야 한다. 현재 테러에 의해서 부드럽게 그들과 담소를 해야 한다. 현재 테러에 의해서 격리되고 있는 두개의 힘은 이렇게 해서 조화되고 결합된다. 이제까지 이것을 이간해 둔 것은 두 개의 힘을 제각기 우리들의 세력하에 굴복시키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의 왕은 결코 감정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특히 정욕에 빠져서는 안된다.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는 것과 같은 일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다. 정욕은 정신적 능력의 최악의 적이므로 명민한 관찰력을 흐리게 하며 어떠한 천재라도 더러운 동물적 본능을 채우는 일만을 생각하게끔 하고 만다. 다윗의 신성한 후예인 세계의 왕은 인류의 복지를 위해 모든 개인적 향락을 희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들의 왕은 일 점이라도 잘못이 없는 만인의 광휘 있는 모범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