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vs. 영화 Architecture vs. Film

By aRchie  -  On 15 Oct, 2003 -  0 comments
영화
많은 사람들이 마치 제의ritual처럼 영화관으로 향한다. 정해진 시간에 모여 앉아, 조명이 꺼지길 기다린다. 어둠이 주위를 감싸면 그들은 무의식의 문을 열고 화면을 응시한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와 인간세상을 떠도는 모든 종류의 감정, 욕망들이 이 어둠의 공간을 떠돈다. 새하얀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상을 같은 자세로 보고 있지만, 그들은 각기 서로 다른 감정과 생각들을 만난다. 다시 불이 켜지면 사람들은 저마다의 느낌으로 현실의 공간을 향한다. 어떤 이는 시간과 돈이 아깝다고 하지만, 영화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은 현실의 괴로움을 딛고 일어설 용기와 희망을 얻거나, 자꾸만 잊게되는 꿈을 만날 수도 있다.

건축
건축은 살아가는 방식을 규정하는 틀을 만들어내는 공간예술이다. 태초에 황량한 벌판에 두발로 선 인간들이, 자신들의 인지능력을 넘어선 거대한 공간에 하나의 이정표로서 점(피라밋, 스톤헨지, 지구라트 등)을 찍을 줄 알게 되면서 문명은 시작된다. 구획과 경계라는 영역성 개념이 생긴 인간은 자신의 잣대로 세상을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세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조직하게 된다. 정치, 경제, 사회 조직 등, 삶의 양식이 분화 발달함에 따라 새로운 쓰임새의 공간조직이 필요하게 되었고, 새로운 건축 기술도 생기게 되었다.

권력의 역사
인간에 의해 고안된 공간들이 인간을 어떤 방식으로 규율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이루어진 것은 그리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푸코(Michel Foucault)가「감시와 처벌」(1977)에서 다룬 권력관계와 억압에 대한 분석은 결국 공간배치와 시선의 문제였다. 즉, 특정한 공간의 배열방식과 반복적인 사용은, 개개의 주체생산방식과 연결되어 세상을 보는/보여지는 사고와 활동의 습속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 시킨다는 것이다. ‘역사는 스턴버그의 영화처럼 비연속적인 영상들로 진행1)되는 것’이라는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역사관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푸코는 그래서 옳은 것과 그른 것의 분류방식에 대한 지식과 역사를 탐구하였으며, 근대 이전과 이후의 주체생산의 비연속적인 변화에 대한 분석을 하였다. 그는 18세기 이전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았다2)고 제시하면서, 현재가 가장 진보된 시대라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현실의 양상에 대한 파악뿐만 아니라, 결국 우리가 보고있는 어떤 사건에 대한 이항대립적 판단이 불가능함을 제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건축의 역사 역시, 변화를 주도하는 정치적, 경제적, 기술적인 상황의 측면에서 서술되어 왔으며, 결국 이것은 권력/힘의 역사였다.

현대의 조건
오래전 도시의 인구가 적고 사람들의 활동분야가 세분화되지 않았던 시절. 광장에 모이고 성당에 들어가는 일련의 행위들이 의식화된 상황에서, 건축은 사람들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며(Architecture Parlante) 주요한 미디어로서 작용할 수 있었다. 현대를 대표하는 권력인 돈을 지닌 부유한 고객들만이 자신의 표현을 위해 건축을 이용한다. 일상의 건축은 점차 배경으로 사라져간다. 익명화된 대중들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나름의 방식을 찾아낸다. 인터넷. 그 곳에선 나를 중심으로 형성된 가상공간 네트워크가 현실 공간보다 훨씬 커진다. 아무리 자그마한 공간이라도 컴퓨터만 있으면 나의 세상은 링크되어 무한히 펼쳐져 있게 되는거다. 내가 느낄수 있는 세상의 범위는 이미 물리적 공간에 한정되지않고. 내 신체의 한계도 조금씩 벗어던지게 된다. 개인의 존재근거로서 공간의 조건이 변화하고 있다.

생은 다른 곳에
극장공간의 작은 좌석에 들어가면 영화 속 세계가, 조금씩 상상력으로 확장되면서 강력한 증폭파장으로 돌아온다. 중세의 어두컴컴한 성당에서의 느끼는 성스러움이 그러한 강력한 경험과 비교될 수 있을까? 건축을 통한 강력한 정서적, 영적 경험을 구현이란 점점 힘든 이야기가 되고있다. 건축재료는 크게 변화하지 않고, 중력의 한계는 언제나 존재했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욕구는 우릴 점점 가벼워지게 만들고, 새로운 시도는 우리의 환상세계를 넘지 못한다. 우리의 생은 정말 다른 곳에(Life is elsewhere) 있는걸까? 현재 우리의 모습에 대한 갈증들과, 왠지 해답이 다른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그런걸까? 사람들은 왜 영화나 인터넷에 몰리는 걸까? 가상세계에서의 내 자리를 찾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버리고, 물리적 공간을 다루는 건축가의 존재의미도 점점 퇴색된다.

건축과 영화
인류문명과 함께 시작된 건축에 비하면, 영화의 발생은 겨우 100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두 예술의 종말은 결국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왜냐하면, 건축은 인간의 삶의 체험을 담고있으며, 영화는 인류의 무의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건축 안에서 자신의 삶을 영위하고, 영화를 통해 무의식을 펼치는 것이다. 두가지 모두 인간의 존재이유(Raison d’etr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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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불한당들의 세계사」중 ‘냉혹한 살인자 빌 해리건’의 한 구절이다. 이 글에서 보르헤스는 어떤 영화감독이라고 했지만, Edgardo Cozarinsky의 「Borges inand/on Film」 (Lumen Books) 을 보면 Josef von Sternberg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2)「사물의 질서」에서 그는 18세기와 19세기에 신이 중심적 자리를 잃고, 앎의 근원이 인간이 되면서 – 인간이 인식의 대상이자 주체가 되면서 – 여러 지식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재검토는 당시 인문과학을 새로이 전면에 대두시키게 된다.

(월간 CONCEPT 2003.10 기고)